경기도 평택에서 아프리카 커뮤니티 축구대회가 열렸다. 국내 거주 중인 아프리카 16개국 1300여 명이 선수와 관중으로 함께 하며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승팀 카메룬 선수들의 기념 촬영. 사진 나선진 작가
어둠은 때로 환한 빛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지난 24일, 경기 평택시 포승레포츠공원 축구장을 비추던 조명시설이 일제히 꺼진 순간이 그랬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그라운드와 주변에서 1300여 개의 작은 불빛이 피어나 반딧불이처럼 떠다녔다. 관중들이 일제히 들어 올린 휴대전화 플래시였다. 타국에서 고단한 노동으로 굳은살이 배인 이주민들의 손이 밤하늘의 별처럼 경기장을 밝혔다. 아프리카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로 ‘우모자(Umoja)’, 즉 ‘연대’와 ‘하나됨’의 정신이 평택의 밤하늘을 수놓은 경건한 장면이었다.
이날 현장에선 올해로 5회째를 맞은 ‘2026 국내 거주 아프리카 커뮤니티 축구대회(KAFCON)’가 열렸다. 민간단체인 ‘한국·아프리카 커뮤니티 축구협회’와 ‘AFRO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주최하고 지역사회가 십시일반 힘을 보태 개최한 대회다. 특히나 올해는 식민주의 극복과 범아프리카주의를 기념하는 ‘아프리카의 날(5월25일)’을 하루 앞두고 열려 그 의미가 남달랐다.
초창기엔 소규모 지역 행사로 치러지던 KAFCON은 이제 전국에서 1300여 명의 아프리카사람들이 모이는 거대한 교류의 장이 됐다. 경기장 인근에 자리잡은 포승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해 대규모 공단이 밀집한 평택은 제조업과 물류업에 종사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서로의 애환을 나누는 제2의 고향이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프리카 커뮤니티 축구대회가 열렸다. 국내 거주 중인 아프리카 16개국 1300여 명이 선수와 관중으로 함께 하며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승팀 카메룬 선수들의 세리머니 장면. 사진 나선진 작가
이번 대회에는 가나와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 아프리카의 내로라하는 축구 강국을 포함해 16개국이 참가해 총 32경기를 치렀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결승전에선 카메룬이 ‘디펜딩챔피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1-0 승리를 거두며 우승 트로피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자국 국기를 든 카메룬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뛰어 들어와 선수들과 얼싸안고 환호하는 장면은 뜨거웠고 감동적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부족과 국경의 벽을 허물고 모두를 하나로 묶어내는 가장 강력한 ‘공통 언어’다. 현장을 찾은 아토키 일레카 주한 민주콩고 대사는 “국가가 달라도 기쁨을 공유하는 모습이야말로 아프리카 공동체의 단결된 힘”이라고 말했다. 조지 해리슨 주한 가나 부대사 또한 “모든 아프리카인이 하나가 됐다는 점에서 모두가 승리한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앞으로도 이 행사를 통해 한국과 아프리카의 끈끈한 관계가 민간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올해 대회를 더욱 빛낸 건 화려함이 아니라 ‘여백의 미’였다. 코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무대로 변질될 가능성을 염려해 개막식 자체를 없앴다. 거추장스런 의전을 걷어낸 자리는 오직 축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채웠다. 대회 주최측 관계자는 “멀리서 자비를 들여 찾아온 이들의 유일한 목적은 공을 차며 ‘함께’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축구 대부'로 불리는 한국인 지도자 임흥세 전 남수단축구대표팀 총감독(맨 왼쪽)을 비롯해 아프리카 각국 관계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 나선진 작가
대회 종료 후 현장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그라운드 안팎의 쓰레기를 주웠다. 이를 묵묵히 지켜 본 임흥세 전 남수단축구대표팀 총감독은 “이 대회의 열정과 순수성을 주목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내년에는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많은 분들과 손잡고 규모를 키워 국내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축구 축제로 격상시키겠다”고 말했다.
오전 8시에 시작해 밤 9시까지 쉴 새 없이 구른 둥근 공은 참가자들에게 타향살이의 시름을 달랜 묘약이었다. 언어와 국적의 구분을 지우고 함께 땀을 흘리는 동안 이들은 모두 하나가 됐다. 평택의 그라운드에서 싹튼 아프리카의 ‘우모자’가 내년에도 멈추지 않고 힘차게 구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