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반도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경제성장 전망에서 대만이 한국을 앞섰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반도체 공정 전반이 고르게 약진하고 있고, 기술 수준도 중국보다 한참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쏠림 탓에 산업별·계층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은 두 나라의 공통된 과제였다.
25일 김기봉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 등 연구진이 공개한 ‘대만 사례를 통해 본 우리 경제 성장 여력 점검’ 보고서 내용이다. 중동 사태 이후 대만의 성장률 전망치는 1.8%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올해 2월 말과 최근 해외 투자은행(IB) 9곳의 전망치 변동 폭을 평균해서 낸 수치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성장률 전망치가 0.3%포인트 하향 조정된 것과 대조된다. 전망대로라면 대만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8%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동력은 반도체 호황이다. 대만에선 3월 반도체 수출 주문액이 처음으로 900억 달러(약 136조원)를 넘어섰다. 1년 전과 비교해 65.9% 증가한 수치다.
한국도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기존 2%대 안팎에서 2%대 중반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다만 전쟁 이후 주요 9개 IB의 성장률 상향 조정 폭 평균은 0.3%포인트에 불과하다. 대만과 비교해 6분의 1 수준이다. 연구진은 대만과 한국 간 차이가 생기는 요인으로 반도체 산업의 ▶공정별 점유율 차이 ▶중국과 경합도 등을 지목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에 집중된 반면, 대만은 반도체 3공정(설계·생산·후공정)에서 모두 약진하고 있다. 대만의 공정별 세계 점유율을 보면 설계는 20%로 2위, 생산과 후공정은 각각 60% 안팎으로 1위다. 대만 기업이 대부분 공정을 점유하고 있어 여타 산업이 호황을 고루 누리기 유리한 구조다. 실제 대만에는 TSMC 외에도 반도체 관련 중대형 기업(시가총액 100억~1000억 달러)이 6곳 있다.
한국에선 반도체 산업의 온기가 다른 산업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는 ‘K자’형 성장이 심화하는 것과 대비된다. 연구진은 “반도체 물량 증가보다는 가격 상승으로 수출이 늘어나면서 고용과 중간재 수요 등에 미치는 파급력이 약하다”고 짚었다. 반도체 생산 10억원당 유발하는 취업자 수(취업유발계수)는 2.1명으로 전체 제조업(6.2명)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한국개발연구원).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상황에도 처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제외한 범용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60%에 이르는데, 이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17년 40%에서 올 1~3월 34%로 낮아졌지만, 수입 비중은 같은 기간 32%에서 39%로 상승했다. 반면 대만에선 대중 반도체 수입 비중이 23%에서 오히려 18%로 낮아졌다. TSMC가 최첨단 공정의 90% 이상을 장악하면서 중국이 추격하기 힘든 초격차 역량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다만 반도체가 이끄는 성장에 가려진 고용·임금 양극화 문제는 한국과 대만의 공통된 과제다. 대만의 경우 고용 비중이 3%에 불과한 반도체 산업 평균 연봉이 4만2000달러로 전체 업종(2만4000달러)을 크게 웃돈다. 상위 10%가 소득의 48%를 차지하는 등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 지난해 말 정보기술(IT) 제조업 종사자 임금이 연초보다 약 10% 늘어날 때 비IT 제조업 종사자 임금 상승률은 정체됐다.
이른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지나간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진은 “대만의 경우 증시도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 좌우되면서 내수 경기와 탈동조화되는 등 쏠림이 심화하고 있다”며 “한국 역시 장기적으로 고령화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