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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부엌, 나를 살리는 따뜻한 진료소

중앙일보

2026.05.25 08:06 2026.05.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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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시인

고진하 목사·시인

음식을 만들거나 차리는 방을 주방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육처소(六處所) 가운데 하나로, 대궐 안에서 왕의 수라와 잔치 음식을 준비하던 곳을 뜻했다. 내가 어릴 때는 주방이란 말 대신 그냥 부엌이라 불렀다. 주로 어머니나 누나가 드나들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으며, 아버지가 쇠여물을 끓이는 큰 솥도 부엌 한쪽에 묵직하게 걸려 있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한 시인은 부엌을 이렇게 노래했다.

“부엌이여/ 이타(利他)의 샘이여./ 사람 살리는 자리 거기이니/ 밥하는 자리의 공기여./ 몸을 드높이는 노동/ 보이는 세계를 위한 성단(聖壇)이니…”(정현종, ‘부엌을 기리는 노래’)

밥하는 자리는 사람 살리는 자리
정갈한 음식은 영혼까지 맑게 해
혼밥일수록 정성껏 준비해야

시인이 부엌을 성스러운 제단으로 치켜세운 이유는 명확하다. 그곳이 생명을 살려내는 근원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여인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그 성단이 이제는 성별의 벽을 허물고 모두의 공간이 되었다. 나 역시 부엌일을 아내에게만 맡기지 않고 손수 밥을 지을 때도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 앞에 서면, 일종의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주방에서 밥을 지을 때마다 어떤 약초학자가 한 말을 떠올리곤 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병을 고치는 의사로 세 부류가 있다고 했다.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치는 심의(心醫), 그다음은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식의(食醫), 마지막으론 약으로 병을 고치는 약의(藥醫). 약초학자는 이 세 부류의 의사 가운데 식의가 가장 귀하다고 했다.

예부터 ‘음식은 곧 약(食卽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요즘 우리는 몸이 아프면 아픔의 원인을 따져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병원으로 약의를 찾아가지만, 병원이나 약을 만나기 쉽지 않던 시절엔 어머니들이 몸에 맞는 음식을 지어 식구들의 병을 치료했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는 비를 맞거나 오한이 들어 감기에 걸리면 생강을 진하게 달여 마시고, 소화가 잘 안 되어 체기가 있을 땐 매실 발효액을 물에 타서 마시고, 변비에 걸렸을 땐 바나나를 먹거나 꿀물을 타서 먹기도 한다. 이런 처방은 비단 몸뿐만 아니라 놀란 마음까지 어루만져 준다.

고대 의학서인 『황제내경』에서는 음식을 통한 치료를 중요하게 여겨 “최고의 의원은 주방에 있다”고 단언했다. 음식인문학자 브리야 사바랭 또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정갈한 음식은 영혼을 맑게 하지만, 조급함과 인공의 맛에 절여진 음식은 우리의 내면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강원도 산자락 아래, 마당과 들판에서 얻은 야생초로 요리하기를 즐긴다.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굽혀 나물을 뜯는 일은 물론 고된 일이다. 땀방울이 흙으로 툭 떨어지는 순간, 비로소 식재료 하나에 깃든 우주의 무게와 대지의 노고를 실감한다.

그렇게 얻은 재료로 차려낸 소박한 한 끼를 마주할 때, 내 몸의 세포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깨어난다. 그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땅의 기운을 빌려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생명의 수혈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혼밥이라는 이름 아래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불을 지펴야 한다. 나를 위해 쌀을 씻고 밥 뜸을 들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인 나 자신을 대접하는 숭고한 예우이기 때문이다.

부엌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비린내 나는 도마 위에서 싱싱한 생명의 향기가 피어오르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탁 위에서 우리의 고단한 영혼은 비로소 닻을 내린다.

오늘 저녁, 당신의 주방에 머무는 그 최고의 의원을 외롭게 두지 마시라.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의 노랫소리가 집안 가득 퍼질 때, 삶의 허기는 채워지고 내일로 나아갈 시린 무릎엔 다시 든든한 힘이 고일 테니까.

결국 주방은, 우리가 낮 동안 세상에서 입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매일 밤 조용히 봉합하고 처방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따뜻한 진료소다. 오늘 밤도 그곳에서, 나를 살리는 고요한 기적이 끓고 있다.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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