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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없는 채로 남은 확실한 사랑

중앙일보

2026.05.25 08:08 2026.05.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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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저승에 갔다. 이승을 떠났다. 하늘에 갔다. 사망했다. 그 어떤 말도 내 말 같지 않다. 그 어떤 말도 언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언니는 미래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죽음을 선택하고 죽음을 실행했다. 언니는 이곳에서 사라졌다.
-이랑,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가수·감독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이랑(사진)의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불행이 배턴터치 하듯 찾아오던 자신과 가족의 삶을 독하게 털어놨다. 물론 그 끝은 치유겠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이랑이 암에 걸리자 함께 병원에 가주던 언니는 짝퉁 차림으로 동생을 웃겼다. “온통 가짜로 치장한 언니가 너무 당당하고 멋져 보였기에 나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칭찬하고 잔뜩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날 언니는 ‘채널(CHANNEL)이라도 애티튜드가 샤넬(CHANEL)이면 샤넬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랑이 많은 언니였다. “언니의 옷에는 ‘LOVE’라는 글자와 스마일 그림이 많이 있었다. 내 귀에 있는 귀걸이 세 개도 전부 하트 모양이다. 우리는 이렇게나 사랑을 갖고 싶어했다. 하염없는 사랑을 받고 싶어했다. 우리는 정말 사랑을 좋아했다.”

반려묘 준이치를 잃고는 이렇게 썼다. “없는 채로 남은 확실한 사랑. 놀랍고 놀랍다. 한 생명과 이토록 엄청난 교류를 나누는 경험을 내가 했다는 것이. 그리고 준이치가 20년의 시간에 기꺼이 동참해 준 것이 정말 놀랍고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다. 이 사랑을.”

젊은 여성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은? “그들이 욕망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자주 느꼈다. 가끔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게 재미있었고 신기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에게는 어떻게 해도 ‘권위’라는 게 생기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힘인데, 권위인데, 존엄성이었는데.”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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