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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의 한반도평화워치] 트럼프와 시진핑의 우방 안보 거래, 그 틈새 파고든 푸틴

중앙일보

2026.05.25 08:14 2026.05.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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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지난 14일과 20일 베이징에서 각각 미·중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정상이 긴박하게 전개한 회담은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가 서서히 저물고 다극체제가 현실화하는 국제 질서 변화의 현장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대중국 ‘관계 관리’에 치중한 반면, 중국은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관계’ 설정에 주력했다. 외교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부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단호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1기 시절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위해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시키는 ‘디커플링’을 시도하다가, 결국 위험을 관리하는 ‘디리스킹’으로 한발 물러선 바 있다.

미·중, 중·러 연이은 정상회담
무너지는 미국 중심 일극체제
북·중·러, 협력 틀 마련해 밀착
국익 우선 자강전략 수립 시급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인민대회당에서 사진전을 함께 관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인민대회당에서 사진전을 함께 관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2기 출범과 함께 무차별적인 관세폭탄을 퍼붓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베이징 방문에서 이른바 ‘겁먹고 물러서기(TACO)’ 양상을 보였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인공지능(AI)과 우주·항공 분야의 최고경영자들을 대동하고 베이징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경의를 표하며 사업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히는 등 패권국의 나약한 모습을 노출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미국 내 물가가 상승하는 등 경제적 악재가 11월 중간 선거에 치명타가 될 것을 우려한 조급함이 수세적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중 전략이 ‘관계 관리’로 수정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양국 간의 높은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미국이 한 때 추진했던 ‘결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큰 틀의 ‘세력 전이(Power Transition)’ 관점에서 봐야 한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중국몽(中國夢)’을 전면에 내세웠다. 2013년 서니랜드 회담에서 시 주석은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미·중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고 했다. 이어 2023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선 바이든 대통령에게 “지구는 두 나라가 쓰기에 충분히 넓다”고 수위를 높였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아예 동등한 ‘공존’을 요구했다. 태평양 분할에서 지구 분할을 거쳐 미·중 공존으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이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론’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협상 칩’으로 등장한 동맹 안보
무엇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한 미·중의 세력권 분할 조짐은 우리의 새로운 국가전략 수립을 강요한다. 시 주석이 대만 공격 시 미국의 방어 여부를 압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 오히려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재고할 수 있다고 밝히며, 이 문제를 대중국 ‘협상 칩’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적 후퇴를 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중국의 세력권 요구를 수용 또는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만한 저자세였다. 이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방에 대한 안보 공약을 언제든 저버릴 수 있다는 신호로, 대만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미국에 의존하는 아시아 동맹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의 조기 종전을 위해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지원이 절실해 대만 문제를 카드화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치와 규칙 기반의 질서를 허물고 국익을 내세운 거래를 위해 우방국의 안보를 협상 카드로 쓸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은 한국에도 엄중한 시사점을 던진다. 미국이 대만과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당장 쉽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다극체제로 세계질서가 변하고 있다는 현실은 명백하다. 우리는 이 질서 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AI 시대 핵심국가로 떠오른 우리의 위상에 맞게 국익 우선의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스스로를 지킬 자강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 열린 중·러 정상회담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중·러 공동 대응의 장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피아 구분 없는 관세전쟁의 피로감 속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았고, 두 정상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한 미·중 회담과 달리, 중·러는 47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기타 수단과 외교고립, 경제 제재에 반대한다”며 북한을 감쌌다.

‘두만강 협력’ 강화하는 북·중·러
가장 주목할 대목은 “북한과 함께 3자 형식으로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에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는 점이다. 동해 출해권 확보는 중국의 오랜 숙원이었다. 러시아 역시 부동항(不凍港) 개척의 야심을 갖고 있었다. 과거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이 2009년 북한의 탈퇴 통보로 인해 제한적인 단계에 머물며 정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중·러가 진전된 ‘3자 형식의 해상접근 합의’를 도출하기로 하면서 북·중·러 연대는 더욱 강화되고 북한 경제에도 숨통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두만강을 통한 해상 접근의 핵심 포인트는 나진항 개발이다. 두만강을 통한 해상접근 통로가 열리고 두만강지역에 동북아의 초국가적 경제협력지구가 만들어진다면 이 지역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전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란 핵 개발을 문제 삼아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가 핵 보유를 고집하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이란 핵 개발과 북한 핵 개발에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당장 북·미 정상회담을 기대하긴 어렵다. 중국 역시 북한과 정상회담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핵확산에 반대해온 중국이 북한과 손잡고 반미 3각 연대를 노골화하는 것은 신형대국의 위상과 국제적 책임에 맞지 않는다.

중국은 북·러와의 전략적 협력은 강화하되 신냉전 틀로 완전히 얽히는 데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의 방북 시기가 이란전쟁 상황과 연계되어 신중하게 조정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미·중이 북한과 회담을 추진하는 목적이 선거용 성과 만들기나 세력권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 목표 확인’이라는 의례적인 수사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미·중 정상의 실질적인 행동과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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