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안한 ‘국민배당금’ 구상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AI 산업의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자는 취지였으나, 시장은 격렬하게 반응했고 코스피 지수는 요동쳤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본질과 전혀 다른 ‘초과이익공유제’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며 낡은 이념적 낙인을 찍어 안타까웠다. 이들은 이 제도를 ‘공산주의적 배급제’ 혹은 ‘사유재산권 침해’로 몰아가며 동반성장 정책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했다. 동반성장의 핵심 방법론인 초과이익공유제에 가해지는 이 왜곡된 프레이밍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대기업과 협력 기업이 규칙 따라
이익 나누고, 정당한 보상 통해
산업 생태계 강화하는 상생 모델
국민배당금과는 전혀 다른 개념
분명히 밝혀둘 사실이 있다. 논란이 되는 정부의 국민배당금과 초과이익공유제는 뿌리부터 다른 개념이다. 국민배당금이 조세 제도를 통해 국가의 부를 불특정 다수에게 재분배하려는 거시적 복지 정책이라면,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계(B2B)에서 발생하는 성과를 사전에 합의된 규칙에 따라 나누는 ‘시장 내 공정 거래 모델’이다. 정부가 기업의 주머니를 털어 대중에 나누어주는 배급제가 아니다. 제품 생산과 혁신에 직접 기여한 파트너 기업에 합당한 보상을 정산해 주는 상생 계약인 것이다.
이를 공산주의적 발상이라 비난하는 것은 경제사와 경영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꼴이다. 초과이익공유제의 기원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1920년대 미국의 할리우드다. 영화 제작사는 흥행의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줄이려고 감독, 배우와 ‘기본 출연료(개런티)는 낮추되 흥행 시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맺어 왔다. 그 후 크라이슬러나 롤스로이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해 공급망을 관리해 왔다. 미식축구리그(NFL)에서는 이보다 더 나아간 수익공유제를 채택해 리그 전체의 공존과 번영을 도모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는 구글과 애플 역시 앱 생태계 내 개발자들과 이익을 분배하는 협력이익공유제를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이들이 공산주의 체재에서 움직이는 기업들인가.
국내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이는 낯선 제도가 아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은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목표 이익 초과 시 성과를 나누는 ‘프로핏 셰어링(Profit Sharing)’ 제도를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했다. 사내에서 하던 이 제도를 협력사까지 넓히자는 주장을 두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정서는 시장경제의 진화 방향을 전혀 읽지 못한 결과였다. 자본주의는 탐욕을 방치할 때가 아니라, 절제하고 공존을 모색할 때 더 발전했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이나 『국부론』을 쓴 진의도 중상주의 시대 소수의 독점을 막고 부의 선순환을 유도하여 시장의 건강성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은 기업 개별 경쟁에서 기업이 속한 ‘산업 생태계’ 간의 경쟁(Ecosystem vs. Ecosystem)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대기업이라도 협력 부품사가 부실하면 전체 공급망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진 현재, 동반성장은 단순한 온정주의나 윤리적 구호가 아니다. 기업이 가치를 극대화하고 리스크를 분담하는 ‘최상위 경영 전략(Grand Strategy)’이다.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초과이익공유제는 이 생태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정교한 메커니즘이다. 수출대기업이 협력중소기업과 함께 만들어낸 제품으로 목표 이상의 이익을 냈다면, 그 성과를 이끌어낸 협력사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주는 것이 시장 정의에 부합한다. 중소기업이 그 재원으로 R&D에 투자하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해야 대기업에 더 좋은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이 다시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가 바로 포용적 제도다.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으로만 고이지 않고 실물 경제의 실핏줄인 중소기업과 가계로 흘러야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들은 생태계의 강건함이 곧 지속가능성임을 명심하라고 경고한다. 대기업 경영진은 ‘호랑이는 작은 짐승을 잡지 않는다’는 상생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기득권의 성벽에 갇혀 협력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구조를 고수한다면, 대기업 자신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다. 언론 역시 정파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제도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엉터리 프레이밍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멈추어야 한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끊어진 경제의 혈맥을 잇는 가장 확실한 카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모적인 이념 논쟁이 아니라, 이 제도를 시장 친화적으로 어떻게 더 정교하게 안착시킬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다.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참된 번영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