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카를교. 블타바 강 위에 놓인 약 600년 역사의 돌다리다. 17세기부터 300여 년에 걸쳐 제작한 30개 성인상이 난간에 세워져 있다. 백종현 기자
체코 하면 프라하(Praha)부터 떠오르지만, 프라하가 체코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프라하를 넘어 유네스코가 인증한 시골 마을과 무공해 리조트, 수많은 양조장이 빚어내는 맥주 문화까지 경험하고 나니 체코는 한가지 얼굴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의 멋을 품은 프라하에서 출발해 숲과 초원이 펼쳐진 비소치나(Vysočina)까지 훑고 다녔다. 체코가 한결 깊숙이 새겨졌다.
프라하의 봄
프라하 올드타운 광장의 천문시계. 인형극이 벌어지는 매시 정각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백종현 기자
체코는 프라하로 기억되는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성(古城)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프라하 성을 비롯해 카를교, 바츨라프 광장, 천문 시계 등 굵직한 명소가 다닥다닥 모여 있다. 동선이 간단하니 갈 길 바쁜 여행자에겐 이만큼 효율적인 도시도 없다. 오죽하면 프라하(체코)∼빈(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헝가리) 등 세 나라의 대표 도시를 찍고 다니는 일명 ‘체오헝’ 패키지가 동유럽 여행의 정석처럼 굳어졌을까.
프라하 올드타운은 중세 유럽의 원형을 잘 간직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전 세계 패키지여행의 깃발 부대가 몰리는 이유다. 역사·건축·종교 등등 별별 가이드 투어가 다 있다. 요즘은 댄 브라운이 쓴 프라하 배경의 소설 『비밀 속의 비밀』 속 장소를 좇는 투어가 인기란다.
프라하의 단체 여행 풍경. 요즘은 댄 브라운이 쓴 프라하 배경의 소설 『비밀 속의 비밀』 속 장소를 좇는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인기다. 백종현 기자
600년 역사의 카를교는 프라하에서도 가장 붐비는 관광지다. 밤낮으로 관광객과 거리 음악가, 잡상인이 뒤엉켜 다리 위는 늘 작은 축제장 같다. 난간의 30개 성인상이 수백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중앙의 ‘얀 네포무츠키’ 상 앞에 유독 사람이 몰린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소망이 그곳을 스쳐 갔을까. 반질반질하게 닳은 동상 표면에 여행자의 소원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 듯했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얀 네포무츠키 청동상. 카를교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이 머물다 가는 장소다. 백종현 기자
바로크 양식의 건축이 줄지은 이 느긋한 도시에서 뜻밖의 발견은 한류였다. 도심 번화가에 ‘맛집’ ‘주방’ ‘꼬기’ 같은 한국 간판을 단 한식당이 여럿 있었다. 태극기를 걸고 떡꼬치를 파는 분식집도 보였다.
미카엘 프로하스카 체코관광청 한국지사장은 “한류 영향으로 불고기 같은 한식이 체코에서도 친숙한 먹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프라하 레트나 공원의 청춘들. 블타바 강변 언덕에 자리한 이 공원에서 프라하 올드타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해 질 무렵 레트나 공원 언덕에 올랐다. 한때 스탈린 동상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25m 높이의 거대한 메트로놈 조형물이 우뚝 서 블타바 강과 올드타운을 내려다본다. 수많은 첨탑과 붉은 지붕, 카를교와 프라하성이 한 장의 지도처럼 펼쳐졌다.
힐링 천국 비소치나
프라하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길목에 중세풍의 아담한 시골 마을 텔치가 있다. 너른 초원과 숲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 사이클링 투어가 이곳의 인기 액티비티다. 백종현 기자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차로 두 시간이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건물은 낮아지고, 하늘은 넓어진다. 하이킹 코스만 2000㎞, 자전거 코스가 2800㎞ 이어지는 고원 지대 비소치나 주에 들었다.
이곳의 하루는 명동 수준의 인파에 시달렸던 프라하와 전혀 딴판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시골 마을 텔치(Telč)에서는 자전거로 들판을 달리고, 개울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놀았다.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비소치나에는 숲을 통째로 품은 듯한 리조트가 여럿 있다. 스바타 카테리나 리조트에서는 초보자도 말을 타고 숲길과 초원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백종현 기자
비소치나에는 숲을 통째로 품은 듯한 리조트가 여럿 있다. 스바타 카테리나(Svata Katerina)는 차도 없고 TV도 없는 무공해 리조트다. 4㎞ 바깥에 차를 대고 전기 셔틀로 갈아타 자작나무 숲을 지나니 리조트가 나왔다. 투숙객은 200명 남짓인데, 리조트 부지가 축구장 70개 크기(약 50만㎡)에 달했다.
이곳의 일상도 비현실적이었다. 요가로 아침을 시작해,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빈 뒤, 스파에서 몸을 풀다가,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었다. 리조트 매니저 얀이 “원래 이곳은 오스트리아 상류층의 오랜 휴양지였다”고 귀띔했다. 서울 특급호텔 하루 방값이 50만원을 훌쩍 넘기는 요즘, 같은 값으로 이만한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내심 부러웠다.
맥주 한잔에도 체코가 있다
비소치나 버나드 양조장에서는 거품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체코식 생맥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백종현 기자
체코 사람 앞에서 ‘술부심’은 부리지 않는 게 좋다. 세계에서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높은 나라가 체코다. 성인 한 명이 연간 약 150L, 그러니까 맥주 240병을 마신다. 필스너 우르켈, 코젤, 버나드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이 땅에서 태어났다. 양조장이 전국에 500개가 넘는다.
평생을 ‘맥주는 거품 3할’이 진리라고 믿고 살았다. 주당 틈에서 등짝 맞아 가며 익힌 삶의 지혜다. 그러나 체코에서 ‘한국의 맥주 거품론’이 무참히 깨졌다.
체코 사람은 거품 양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맥주를 마신다. 가장 일반적인 건 세 손가락 두께의 거품을 올리는 흘라딘카(Hladinka)다. 거품이 아예 없는 초흐탄(Čochtan)은 거친 맛이 강한 체코식 상남자 맥주다. 맥주 반 거품 반의 슈니츠(Šnyt), 거품만 채우는 믈리코(Mlíko), 흑맥주와 라거맥주 그리고 거품을 층층이 따르는 르자네(Řezané)도 있다.
거품을 싹 걷어낸 초흐탄(Čochtan·위 사진). 톡 쏘는 맛이 강한 체코식 상남자의 맥주다. 슈니츠(Šnyt·아래 사진)는 맥주와 거품을 1:1 또는 4:6 정도로 따르는 방식이다. 거품이 많아 목 넘김이 부드럽다. 백종현 기자
비소치나의 버나드 양조장에서 브루 마스터 즈비네크가 거품만 가득한 믈리코를 내밀었을 때 “이 아저씨가 장난하나” 싶었다. “거품이 맥주로 변하기 전에 어서!”라는 말에 입 주변에 잔뜩 거품을 묻히며 원샷을 했다. 웬걸, 홉의 향과 몰트의 달콤함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거품이 아니라, 진짜였다.
돌이켜보니 체코에서 가장 많이 입에 넣은 게 맥주였다. 온종일 ‘삐보(Pivo·맥주)’ ‘나 즈드라비(Na zdraví·건배)’를 외치며 체코를 만끽했다.
여행정보
정근영 디자이너
인천공항에서 프라하 직항편이 매일 1편씩 오간다. 비행시간은 약 13시간이다.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리다. 체코의 여름(6~8월)은 한낮에도 23~25도 수준이다. ‘프라하 비지터 패스’로 철도·트램·유람선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고, 관광지 할인도 받을 수 있다. 48시간권 3300CZK(약 23만원). 일반 펍에서 맥주 한 잔(0.5L)이 3000~6000원이다. 자세한 내용은
체코관광청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