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베냐민 네타냐후,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등 40명이 넘는 세계 정상이 그의 렌즈 앞에 섰다.
영국의 작가 플라톤은 초상 사진의 대가다. 30편이 넘는 타임지 표지 사진으로 피바디상, 세계보도사진상을 거머쥐었다. 롤링스톤, 베너티페어, 에스콰이어, 더 뉴요커 등 유수의 잡지와 주간지가 그의 작품을 실었다.
그런 플라톤이 지난 2024년 사진집 ‘The Defenders’ 출간을 기념해 CNN의 간판 기자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와 인터뷰를 했다. 아만푸어는 수많은 인물을 렌즈에 담아온 플라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물었다.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였다.
당시 재선 도전에 나섰던 트럼프는 반대 진영으로부터 계속되는 기소, 법적 소송은 물론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 상황이었다. 1기 행정부 시절엔 두 번의 탄핵 시도까지 겪었다. 플라톤은 그때를 회상하며 촬영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논란의 트럼프가 아닌, ‘인간 트럼프’를 찍고 싶었다고 했다. 카메라를 들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당신이 걸어온 특별한 길을 지켜봤어요. 당신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논란을 불러일으키죠. 마치 당신은 폭풍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 폭풍을 헤쳐 나가는지 알고 싶어요.”
그러자 트럼프는 플라톤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분히 한마디를 했다.
“내가 그 폭풍입니다.(I am the storm)”
그 한마디는 플라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러면서 그 말이 머릿속에 한동안 맴돌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폭풍 속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건 바로 폭풍을 일으킨 장본인일 겁니다. 이런 사람은 매우 강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똑똑해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들을 무시하곤 하죠.”
트럼프는 또 한 번 폭풍을 맞이하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위기라는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란 전쟁, 관세 문제, 강경 이민 정책, 그린란드 발언 등 재선 이후 국내외적으로 잠잠한 날이 없을 정도다.
언론들은 저마다 논란을 재료 삼아 트럼프의 중간 성적표를 점치고 있다. 공화당 필패론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럴 만도 하다. 중간선거에는 이른바 ‘프레지덴셜패널티(presidential penalty)’ 현상이 불거진다. UC샌타바버라 연구팀이 역대 중간선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하원 의석을 늘린 경우는 1934년(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 1998년(빌 클린턴·민주), 2002년(조지 W. 부시·공화) 등 단 세 차례뿐이다.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의석을 잃는 경향은 뚜렷하다. 대통령과 집권당을 견제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면서 대체로 불리한 판세가 형성된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올해도 반복된다면 트럼프와 공화당이 패한다 해도 사실 이상할 건 없다.
녹록지 않은 흐름은 분명한데,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조짐도 있다. 지난 19일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오리건, 켄터키 등 6개 주에서 치러진 공화당 예비선거 경선에서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 37명이 전원 승리했다. 앞서 지난 4월 진행된 조지아주 14지구 하원 보궐선거에서도 트럼프가 지지한 클레이 풀러가 56%의 압도적 지지로 승리했다. 1차 투표에서 선두를 달리던 민주당의 숀 해리스는 반트럼프 여론을 내세우며 승리를 장담했지만 완패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5선 하원의원인 루카스 앳킨슨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하와이주의 엘르 코크런 하원의원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텃밭인 가주도 그렇다. 공화당의 스티브 힐튼이 의외로 주지사 선거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트럼프를 공격하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상대는 또 트럼프다. 민주당은 그 지점에서 헤매고 있다. 트럼프 발목 잡기 외에는 눈에 띄는 어젠다도 없다. 오히려 올해 선거는 트럼프가 패배의 공식을 깰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