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는 대학의 낭만이라는 것이 있었다. 담당 교수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다른 대학의 교수를 찾아가 학점을 따도 괜찮았다. 그런 분 가운데 국민대학교의 이종항(李鍾恒·1919~2017·사진) 선생님이 계셨다. 이른바 통사(通史)로서의 『한국정치사』(1963)를 최초로 쓰신 분이다.
이 교수님은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면 까다로운 교수 밑에서 수업 듣느라고 고생했다며 저녁을 한턱 사셨다. 선생님을 따라나섰는데, 가는 곳이 북촌 어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었다. 두리번거리며 방에 들어갔다.
곧이어 아름다운 여성들이 음식을 차려 나오는데 그 이름도 모르겠고 어찌 먹는 줄도 몰라 선생님이 먼저 드시는 대로 따라서 먹었다. 나는 그때 생선회를 처음 보았다. 기껏해야 명절 두 번에 조기가 제상에 올라왔고, 아버지 생일이면 자반고등어나 꽁치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생선이 먹기에 좋다기보다는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이 지긋한 학생이 아는체하며 “갓 잡은 생선이 참 좋습니다. 생선회는 이렇게 싱싱해야 제맛이거든요” 그랬더니 이 교수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것은 자네가 잘못 알고 있네. 생선은 잡은 뒤에 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쯤 숙성한 뒤에 제맛이 난다네. 이를테면 숙성이라는 게 발효란 뜻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끔 썩힌다는 뜻이지”라고 답했다.
그 학생은 물론 우리는 좀 머쓱해 하며 회를 집어 먹었더니 선생님이 한 말씀 더 하시는데 “생선회가 조금 맛이 갔을 때 맛이 있다는 말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라네. 정치는 조금 맛이 갈 때 살기가 편하다네. 자네들도 나중에 정치할 때 내 말을 잊지 말게”라는 것이었다.
아, 그 말씀이 생선회 맛보다 더 나의 뇌리에 남았다. 그분 말씀인즉, 부패한 사회가 살기 좋다는 뜻이 아니라, 때로는 세속의 편의로움이라는 것도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