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제 한국, 일본, 호주, 그리고 미국은 공급을 확대하고 장기적인 시장 안정을 위해 새로운 ‘에너지 안보동맹’ 창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에너지 시장의 연쇄 충격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됐다. 가스의 47%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은 직격탄을 맞았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비중을 12%로 낮췄고, 2027년까지 완전 퇴출을 공표했다. 설령 휴전이 이뤄지더라도 러시아는 여전히 경제 제재를 받을 것이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러시아의 에너지 인프라(약 45% 추정)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러시아, 중동발 에너지안보 위기
휴·종전돼도 과거 회귀는 어려워
호주·미국·일본 등과 새 판 짜야
여기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은 더 큰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가스 수입량의 2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아시아 경제권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향후 휴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가격 안정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은 카타르 등 주요 수출국의 LNG 시설 복구엔 최소 수년이 걸릴 것이며, 재공격 위험은 상존한다. 이란이 대중국 수출을 재개할 순 있겠지만, 미국·이란 협상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거나 탄도미사일 개발의 자금줄을 차단하긴 어렵다. 이에 따라 미국·이스라엘은 언제든 이란을 타격할 수 있고, 이란은 군사적 타격을 입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수백 개의 기뢰만으로도 해운사들의 통행을 저지하기엔 충분하다.
이란전쟁 직후 아시아 국가들은 새 공급처를 찾아 나서고 있다. 호주 총리가 싱가포르에 지원을 요청하고, 미국 멕시코만에서 생산된 물량이 사상 처음으로 호주와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보다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새 컨소시엄을 구축하기에 최적의 파트너십을 보유하고 있다. 소위 ‘역 OPEC(Reverse OPEC)’라고 부를 만한 연합체다. OPEC이 가격 상승을 위해 감산을 결정하는 카르텔이라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역 OPEC’은 생산을 늘려 가격을 낮추고 장기적 공급 안정을 보장하는 컨소시엄이다. 이를 위한 최적의 파트너국은 이미 준비돼 있다.
호주는 카타르와 러시아의 뒤를 잇는 세계 최대 가스 매장국이다. 10년 전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자본 투자의 3분의 1이 호주에서 진행됐지만, 현재는 8%에 지나지 않는다. 각종 규제와 환경 로비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란전쟁과 국내 에너지 부족 사태로 정치인과 관료들은 에너지 생산 확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캐나다는 기후정책에 치중했던 전임 트뤼도 총리하에서 세계은행 기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지수가 7위에서 23위로 떨어졌지만 마크 카니 총리는 방향을 선회했다. 가스 수출의 95%를 미국에 했던 캐나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찰로 수출대상을 아시아로 대체하려고 한다.
미국은 자타공인 에너지 슈퍼파워다. 지난해 호주를 제치고 세계 최대 LNG 공급국이 됐으며, 유럽의 주요 가스 수입처로 러시아를 대체했다. 주로 미국 걸프만에서 생산되는 가스는 서부 해안에 수출 터미널이 없지만, 알래스카산 노스 슬로프 가스 수출을 위해 미국 기업과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지원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에너지 지배력 위원회’를 설립해 인허가 기간을 연 단위에서 주 단위로 단축했다.
일본은 거대한 금융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100억 달러 규모의 신용한도를 설정해 에너지 위기로 피해를 본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JBIC, INPEX 등 금융·에너지 기업들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기도 하다.
한국을 중심으로 이런 국가 간에 새 에너지 안보동맹을 구축한다면 시장과 각국 정부에 강력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상호 금융 지원과 인허가 절차 간소화, 자원 공동 개발을 가속하는 것은 물론 안전한 해상 수송로 확보를 위한 해군 및 군사 전략 공조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핵심 목표는 명확하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아시아 내 유사 입장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제 걱정만 할 때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