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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선 넘는 연애 프로, 빌런 내세워 장사하나

중앙일보

2026.05.2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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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일반인 출연자를 일정 기간 중 특정 공간에 격리시키고 커플을 맺어주는 연애 프로그램의 원조는 2011~2014년 방송된 SBS ‘짝’이다. 본명 대신 1호·2호 기호로 불리고, 직업·나이 등 개인 신상을 비밀에 부쳤다가 서서히 공개하는 방식이 여기서 시작됐다. 상대의 사회적 조건은 모르는 채 외모로 첫인상 선택을 하게 하면서, 커플 매칭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결정적 비중을 가시화했다.

격리된 공간에서 짝 찾는 예능
빌런들의 활약상 갈수록 커져
밉상 출연자 욕하는 재미 선사
의도적인 빌런 선발 의심 사

연애프로그램의 원조 SBS ‘짝’. [사진 각 방송사]

연애프로그램의 원조 SBS ‘짝’. [사진 각 방송사]

‘짝’은 제주도 촬영 중 한 여성 출연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폐지에 이르게 됐다. 프로그램 특유의 경쟁적 상황이 출연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아무와도 짝이 되지 못한 ‘0표녀’였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제작진의 책임은 없고 ‘개인적 사정’이 이유였다고 결론 내렸다.

화제성만큼 논란도 많아
최근 연애프로 전성시대를 연 SBS플러스 ‘나는 솔로’. [사진 각 방송사]

최근 연애프로 전성시대를 연 SBS플러스 ‘나는 솔로’. [사진 각 방송사]

‘짝’을 연출하다 SBS에서 퇴사한 남규홍 PD가 자기 제작사를 차리고 만든 연프가 ‘나는 솔로’(SBS플러스·ENA)다. 2021년 시작해 현재 31기까지 화제를 몰고 다니며 연프 전성시대를 열었다. 화려한 외모의 준연예인급이 출연하는 ‘솔로지옥’(넷플릭스) 류와 달리, 상대적으로 평범한 남녀를 출연시켜 ‘진정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커플 탄생에 실패한 역대 출연자들을 재활용하는 스핀오프 ‘나솔사계’, ‘지지고 볶는 여행’까지 나왔다.

인기와 화제성만큼 논란도 많았다. 주로 출연진의 과거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출연자 리스크였다. 방송 초기 일부 출연자의 무례한 언행 논란은 애교에 불과했다. 허위 경력이나 이혼 사실, 범죄 이력을 숨긴 출연자에 양다리 논란, 학폭 논란 등이 줄을 이었다. 남녀 출연자끼리 법정 공방을 벌여 벌금형이 나오거나, 방송 출연 이후 유명세를 탄 남성 출연자가 성폭행 유죄 판결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알다시피 ‘나솔’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연프가 아니라 격리된 공간에서 사랑찾기 미션을 수행하는 일종의 ‘인간실험실’ 혹은 ‘사회실험실’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실험을 드라마틱하게 수행할 진상 캐릭터 ‘빌런’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시청자도 매회 한두 명씩 나오는 빌런의 ‘매운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PD는 무슨 복으로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냐”며 ‘용인술’에 감탄하는 목소리까지 있다. 시청자들이 찍어올리는 유튜브 영상도 차이가 난다. 가령 ‘솔로지옥’이 누가 누구와 맺어질지 점치고 응원하는 리액션 비디오 위주라면, ‘나솔’은 출연자, 특히 빌런들의 심리·인성을 분석·비판하는 리뷰 콘텐트가 주류다. 비교적 양질의 전문적 리뷰도 있지만, 사이버 레커들의 ‘인성파탄자 욕하기’ 콘텐트도 다수다.

문제는 빌런들의 활약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본말이 전도되고, 이들은 이들대로 감당키 어려운 악플 세례에 노출되는데도 제작진은 수수방관한다는 점이다. 최근 방영한 ‘나솔 31기’가 대표적이다. 역대급 기수인 31기는 여자 출연자들 간 집단 따돌림, 뒷담화, 이간질과 편가르기 등으로 논란이 됐다. 급기야 스트레스를 받은 한 여성 출연자가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연프 특유의 설렘 대신 학폭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을 본 듯해서 PTSD 온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았다. 유튜브에서는 이들의 ‘악행’을 성토하는 영상이 올라오고, 라이벌 여자들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한 인기남의 사업장은 별점 테러를 받았다. 결국 제작사는 논란이 된 영상을 내렸고, 일부 출연자는 사과문을 올리고, 일부 출연자는 법적 대응을 밝혔다.

사태의 1차 책임은 당연히 출연자들에게 있다. 방송 중 이들은 “나는 좀 멋있게 나올 것 같아” “나는 찌질하게 나올 것 같아” “본인이 여기서 (정리) 못하면 악플 감당해야 해요”라고 말한다. 방송 이미지를 충분히 신경 쓰고 있으며 후과도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프 출연이 곧 자기 PR과 유명세를 보장하는 것이니 약간의 인신공격은 감수해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방송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단지 시청자가 불편해할 장면을 거르지 않았다는 차원이 아니다. 제작진이 출연진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빌런 플레이로 재미를 보는 프로이니 경쟁상황에서 돌출행동을 할 트러블 메이커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출연자들은 자신이 빌런으로 낙점됐다는 것도 모르는 채 충실히 제 역할을 하다가 시청자의 욕받이가 되는 건 아닌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방송 몇 회만에 출연자 사과문
돌싱 여성과 모솔 남성의 매칭 프로그램 MBC에브리원 ‘돌싱N모솔’. [사진 각 방송사]

돌싱 여성과 모솔 남성의 매칭 프로그램 MBC에브리원 ‘돌싱N모솔’. [사진 각 방송사]

이런 의심은 MBC에브리원의 신규 연프 ‘돌싱N모솔’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돌싱 여성과 모솔 남성을 매칭하는 프로그램인데, 1회부터 빌런들의 분탕질이 화제가 되며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일부 출연자의 자기중심적이고 상식 밖 언행에 “나솔이 놓친 인재” “모솔이 왜 모솔인지 알겠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방송 몇 회 만에 한 출연자는 사과문을 썼다. 이후 갑자기 분위기가 훈훈해지면서 ‘연애기숙학교’라는 컨셉에 맞게 이들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초반부 낙인찍기가 너무 강력하다.

안 그래도 각종 빌런을 찾아 도덕적 비교우위를 확인하듯 난도질하는 일이 ‘도파민 뿜뿜’ 정의구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일반인 출연자를 소재로 쓰는 방송 프로그램은 그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제작 윤리를 지켜야 한다. 프로그램을 비호감 캐릭터를 선보이는 ‘인간 동물원’처럼 꾸미고 먹잇감을 던져주는 빌런 장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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