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사태를 겪으며 문해력(文解力)의 한계를 느꼈다.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됐다. 요즈음 MZ들은 ‘우천(雨天)시 강당으로 장소 변경’이라는 공지에 “우천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며 헛웃음을 지었건만. 스타벅스 코리아의 마케팅 논란 앞에 나도 꼼짝없이 문해력 결핍의 소비자가 되고 말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한 ‘5·18 탱크데이’ 마케팅의 심각성을 뒤늦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6·3 지방선거의 여야 진영 논쟁으로 확산해 더 혼란스러워졌지만, ‘설마 고의로 했겠어’라는 생각이 앞섰다. 탱크 텀블러의 용량 503mL(박근혜 전 대통령 수인번호), ‘탱크 듀오 세트’의 할인율 21%(5·18 계엄군의 발포일), 세월호 참사 10주기(2024년 4월 16일) 출시 스타벅스 로고(세이렌) 머그잔으로 의혹이 이어지자 좀 과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심과 경계의 수위를 좀 높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난 19일 전해진 스무 살짜리 래퍼의 공연 취소 소식이 영향을 줬다. 그 래퍼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듯한 가사가 담긴 노래로 노 전 대통령 서거일(5월 23일)에 맞춰 공연하려다 제지됐다. 노무현재단이 공연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공연장 측이 대관을 취소했다. 노래 가사에 ‘노무현처럼 jump(점프)’ 등의 조롱과 비하가 가득했다. 공연 시간은 오후 5시23분이었고, 티켓 가격은 5만2300원이었다. 노무현 재단은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역사의 아픔을 모욕하려는 모든 시도에 앞으로도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롱과 모욕으로 무장한 래퍼는 인스타그램에 고개 숙이며 자필 사과문을 제출하는 사진을 올렸다. “고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언행을 단지 유명세를 위해서 일삼아 왔다”며 “철이 없고 그저 재미로 했다는 말은 변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고 용서를 구했다. 공연 취소 하루도 되지 않아 쓰인 스무 살의 반성문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있을까.
유명세와 재미를 위해 혐오와 모욕과 조롱은 놀이처럼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욕인 줄도 모르고 욕을 해대는 아이들처럼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참사 피해자 조롱을 SNS에 쏟아내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던 것이 영역을 확장해 대기업 마케팅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탱크데이와 세이렌 머그잔에 혐오와 모욕의 문법이 스며들었을 공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높은 주파수로 개를 부를 때 쓰는 ‘도그 휘슬(Dog Whistle)’처럼, 끼리끼리만 조롱과 혐오의 메시지를 공유하면서 일반 대중에겐 들리지 않게 해 책임은 피해가는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있다는 얘기다.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와 지지자들이 SNS에 멸치와 콩을 올려 ‘멸공 챌린지’를 확산한 것이 유사 사례다. 거기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관여한 게 이번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스타벅스 마케팅의 고의성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배를 난파시키는 신화 속 요정 로고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려 했다는 끔찍한 발상은 음모론으로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혐오의 문법이 도사리는 환경에선 선뜻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국민 기업이라 불리는 회사라면 억울해 하기에 앞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 과정은 공동체가 존중해야 할 가치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목숨을 바쳐 지킨 민주주의의 역사, 참사의 비극을 견디는 연대감을 훼손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앞으로도 엄밀한 검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은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의 어원이라고 한다. 이번 사태를 혐오 사회에 대비하는 사이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