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 중 하나는 사실감 넘치는 '사자 CG'였다. 이 장면은 VFX 전문 기업 웨스트월드가 AI와 VFX를 결합한 독자적 제작 방식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극 중 황동만(구교환)은 꿈속에서 사자와 마주하며 현실의 압박과 불안을 체감한다. 사자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 주인공의 두려움과 역경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였다. 하지만 국내 드라마에서 참고할 만한 사실적인 사자 CG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제작 기간도 촉박해 구현 난도가 높았다.
웨스트월드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초기 사자 이미지를 제작한 뒤 자체 VFX 기술로 털 질감, 눈빛, 표정, 걸음걸이 등을 세밀하게 보완하는 방식을 택했다. 단순 AI 이미지 생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 촬영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후반 작업을 더했다.
이 같은 방식은 겨울 배경 장면에도 적용됐다. 일반적으로 한 달 이상 걸리는 복잡한 3D 작업을 AI 기반 배경 제작과 VFX 합성을 통해 1~2주 수준으로 단축했다. 웨스트월드는 이러한 제작 방식을 'AI VFX'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AI 기반 프리비즈도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프리비즈는 배우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사전 시뮬레이션 작업이다. 웨스트월드는 AI로 제작한 사자 프리비즈를 배우에게 제공했고, 구교환은 이를 참고하여 보다 자연스럽고 몰입감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실제 촬영 징면(왼쪽)과 VFX 적용 장면. [사진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이용섭 웨스트월드 본부장은 "기존 동물 에셋과 프리비즈 방식을 활용해 사자의 움직임을 먼저 설계한 뒤 AI 모델링과 결합했다"며 "짧은 제작 기간 안에 프리비즈부터 최종 CG까지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보안 문제 해결에도 공을 들였다. 웨스트월드는 외부 유출 없이 활용 가능한 내부망 기반 AI 시스템 '웨버(Wever)'를 자체 구축해 미공개 영상 데이터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AI와 기존 VFX 파이프라인을 결합했다.
손승현 웨스트월드 대표는 "AI 활용이 확대되는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과 신뢰"라며 "이번 작업은 AI와 VFX를 안전하고 정교하게 결합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실제 현장에서 검증한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웨스트월드는 '오징어 게임' '스위트홈 시즌1' '파묘' '눈물의 여왕' 등 다양한 작품의 VFX에 참여해온 콘텐트 기술 그룹이다. 아울러 AI와 VFX를 결합한 자체 제작 파이프라인과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며, 글로벌 콘텐트 시장에서 기술 기반 스튜디오로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