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음악계의 관심이 한 지휘자에게 쏠렸다. 1986년 홍콩 출생인 엘림 찬. 미국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21일 그를 음악 감독 내정자로 발표했다.
오케스트라의 115년 역사상 첫 여성 음악 감독이다. 찬은 세이지 오자와, 마이클 틸슨 토마스 같은 역사적 지휘자들의 명단을 이어가게 된다. 여성 지휘자의 무대는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지만 주요 오케스트라의 직책을 맡는 일은 흔치 않았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보다 앞서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여성 지휘자를 맞이하게 됐다.
침체 위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만성적자 시달리는 예술의전당
두 여성 앞에 놓인 만만찮은 도전
찬의 샌프란시스코 행 소식은 자연스럽게 지휘자 장한나를 떠올리게 한다. 홍콩에서 태어난 찬은 어린 시절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했고 미국의 명문인 스미스 칼리지에서 심리학과 의학을 공부하다가 지휘로 전공을 바꿨다. 런던의 도나텔라플릭 지휘 콩쿠르에서 2014년 우승한 이후 착실하게 경력을 쌓았다. 런던 심포니의 부지휘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펠로 과정에 참여했고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 안트베르펜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를 지냈다. 큰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지휘를 하고 그 외의 악단에서 직책을 맡다가 좋은 악단의 전임 지휘자로 자리 잡는, 전형적인 성장형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첼로로 음악을 시작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해 이력이 비슷한 장한나 또한 지휘자 경력이 도약하려던 참이었다.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를 지냈고,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에서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명문 오케스트라와 호흡도 맞춰본 참이었다.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데뷔했던 때가 지난해 6월이다.
장한나와 엘림 찬은 차세대 여성 지휘자를 꼽는 리스트에서 함께 이름을 올리고는 했다. 하지만 올해 두 지휘자의 행보가 갈렸다. 장한나는 지난달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했다. 12세에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등장했고, 25세에 지휘자로 첫 무대에 섰던 그가 이번에는 44세의 최연소 사장으로 경력을 전환했다. 지휘자로서 유럽에서 예정됐던 무대는 잇달아 취소해야 했다.
‘최연소 여성’이라는 타이틀은 화려하지만, 쌓여있는 문제들은 만만치 않다. 두 여성 지휘자는 지금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115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가 지금”이라고 표현했다. 엘림 찬의 전임 음악 감독이었던 에사 페카 살로넨은 지난해 사임을 발표하며 “기관과 미래에 대한 목표가 다르다”라고 했다. 티켓 수입과 기부금이 줄어든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취소하고 지출을 줄인 후였다.
예술의전당 또한 1988년 개관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다. 2024년에 76억원 규모의 적자가 나는 등 만성 적자가 쌓여 살림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임 사장의 임기 만료 후 공백은 10개월에 달했다.
획기적으로 기용된 두 리더가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까. 찬은 “관객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청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콘서트 시리즈 등을 기획하려 한다”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오케스트라 구성원들과 최근의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고 깊이 있게 대화했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장한나 사장의 취임 일성 또한 매서웠다. 지난달 취임식에서 그는 “예술의전당의 경쟁 상대는 다른 공연장이 아니라 넷플릭스·유튜브·여행·게임”이라며 “공연예술 시장은 성장하는데 왜 예술의전당만 성장하지 않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취임 직후 설정한 방향이 핵심을 잘 겨냥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엘림 찬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정식 취임은 내년이고, 임기는 6년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소통하고 계획하며 추후에 수정할 시간까지 있는 셈이다. 장한나 사장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의 임기는 3년이고 시계는 이미 굴러가고 있는데 예술의전당에 대한 구체적인 회생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휘봉을 잡으면 언제나 음악을 뜨겁게 달궜던 장한나가 또 한 번 속도를 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