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좁은 내수시장, 부족한 자원, 분단의 제약을 넘어 수출로 국가 역량을 축적했다. 세계와 경쟁하며 강해졌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바이오와 방산은 그 축적의 상징이다. 최근 국내 증시 시가총액 7000조원 성취도 제조와 수출이 만든 국가 경쟁력 위에서 가능했다. 이제는 세계로 나가는 힘을 넘어, 세계가 들어와 뿌리내릴 수 있는 깊이를 갖추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지역소멸, 산업인력 부족, 글로벌 인재 경쟁이 첨예한 현실에서, 사람과 자본, 기술과 데이터가 한국 안에서 머물고 성장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곧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저출생 시대, 개방은 생존 전략
인구 정책이 산업 경쟁력 좌우
세계 인재가 머무는 나라 돼야
지난달 22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주관으로 법무부와 서울대학교가 공동 개최한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 토론회는 바로 이 질문을 던졌다. 이름은 이민정책이지만, 본질은 단순한 출입국 관리가 아니다. 인구정책이고 산업정책이며 지역정책이고, 나아가 국가전략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2025년 말 국내 체류 외국인은 27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4%에 이르렀다. 유학생은 30만 명을 넘었고,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숫자의 증가는 개방국가의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은 의미 있는 방향 전환을 담고 있다. 우수인재 유치, 지역 연계형 체류 모델, 디지털·AI 기반 행정은 단순한 제도 정비가 아니다. 특히 “공무원이 일하기 편한 행정”에서 “기업인과 외국인이 일하기 편한 행정”으로 바꾸겠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개방국가는 외부에서 들어온 자본·인재·기술·문화가 국내 제도와 산업, 사회 구조 속에서 생산성·혁신·정착·통합으로 전환되는 나라다. 한국은 세계화와 혁신 역량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제도 영역과 사회적 흡수력은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전이계수다. 전이계수는 외부의 자본·인재·데이터·문화가 유입된 뒤 그것이 실제 생산성·혁신·정착·사회통합으로 바뀌는 힘을 뜻한다. 한국의 전이계수는 제조업과 대기업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지역, 외국 인재 정착 영역에서는 병목이 뚜렷하다. 복잡한 비자체계, 높은 서비스 규제, 데이터 이동의 제약, 사회적 수용성 부족이 성장의 흐름을 막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책은 부족한 노동력을 임시로 메우는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학과 산업, 지역과 행정이 따로 움직이는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이에 더해 개방은 무질서한 문호 확대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중앙일보 사설이 지적했듯, 난민 신청·심사·이의신청·행정소송이 장기화하면서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난민협약의 정신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보호하는 데 있다. 개방국가는 포용을 우선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교해야 한다. 선량한 이주자와 난민에게는 길을 넓히고, 제도를 악용하는 브로커와 허위 신청에는 단호해야 한다. 질서없는 개방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균형이다. 필요한 역량에는 길을 열고, 제도의 남용에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지역의 수요는 반영하되 주민의 수용성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산업의 인력난은 풀어야 하지만 국내 노동시장과 임금 질서를 흔드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착의 기회는 넓히되 한국어, 법질서, 공동체 책임이라는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유입이 많아도 정착이 약하면 한국은 경유지에 머문다. 정착은 이루어져도 성장이 약하면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성장은 가능해도 수용이 부족하면 갈등이 축적된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단일민족의 서사도 새로운 국가전략의 차원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수출국가 한국은 세계로 나가며 강해졌다. 세계의 인재와 자본, 기술과 문화가 한국 안에 들어와 머물고 성장할 수 있을 때, 한국은 비로소 더 깊은 국가가 될 것이다. 국가의 필요와 국민의 신뢰, 산업의 수요와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개방이다. 개방의 품격은 문을 얼마나 크게 여느냐가 아니라, 들어온 역량을 한국의 성장과 공동체의 안정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바꾸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