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반도체 호황에 대해 이런 인터뷰를 한 이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를 이끈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다. 우리가 잘해서만도 아니고, 이 호황이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얘기다. 그의 말은 틀린 데가 없다. 가전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차, 2차전지,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이 중국에 다 따라잡혔다. 반도체 하나만 남았다. 그 반도체 산업의 2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최근 천문학적인 성과급 파티가 벌어졌다. 파티는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업익 N% 성과급’은 빠르게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파티는 ‘지금 한국 경제는 건강한가’란 의문을 제기한다. 건강한 경제라면 절대로 소홀히 다루지 않을 세 가지 포인트에서다.
삼전 노조 파업 불사로 사측 압박
노란봉투법 등이 모럴 해저드 토양
파업 문 넓혀주고, 방지 장치 약화
지난달 23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우선 ‘미래’. 사활적 경쟁을 벌이는 첨단산업에서 영업익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장기간 떼어주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삼성전자는 무려 10년이다). 가령 증권업계 추정대로 삼성전자가 돈을 벌면 ‘사업 성과의 10.5%’ 규정에 따라 삼성전자는 반도체 직원들에게 3년간 약 120조원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게 된다(메모리사업부 직원 1인당 대략 20억원). 이 규모는 삼성전자가 2022년 이후 4년간 쏟아부은 연구개발(R&D)비와 맞먹는다. 이러고도 삼성전자가 ‘초격차’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구글·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와 중국 기업들은 돈을 외부에서 끌어 써가며 투자 확대에 올인하고 있는데. 호황 때 번 돈을 나눠먹는 데 쓴 기업치고 초일류로 살아남은 경우가 없다.
둘째, ‘주주’.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당연한 원칙이 훼손됐다. 엄청난 영업익의 N%를 직원 성과급으로 책정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에 대한 고려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주주들로선 배당이익을 침해당한 측면이 있다. R&D와 설비투자 재원이 그만큼 줄었으니 회사 미래가치가 잠식됐다고도 볼 수 있다. 급기야 정부 내에서 “초과이익 분배”(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언급까지 나왔다. 초과이익이란 말도 어폐가 있지만, 그 이익 분배에 정부가 개입하려는 발상은 자본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삼성전자 노사문제 등 노동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셋째, 노사 간 운동장의 균형. 삼성전자 노사 협상의 급소는 ‘파업’이었다. 파업으로 반도체 공장을 멈춰세우겠다는 노조의 발상에 사측은 물론 국민들까지 경악했다. 파업 시 직간접 손실이 100조원이라는 얘기에도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직원들을 납득시킬 성과보상 시스템을 등한시한 사측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무조건 파업만은 막아야 하는 사측으로선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었다.
노조가 파업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 회사 신뢰의 추락 등을 개의치 않으면 협상은 노조에 단연 유리해진다. 그래서 법은 파업 조건을 제한하고, 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한다. 그러나 이런 힘의 균형은 이재명 정부에서 급격하게 노조 쪽으로 기울었다. 현 정권이 강행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단적인 사례다.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넓어졌고, 사측이 노조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는 현저하게 축소됐다. 파업권은 강화되고, 방지 장치는 약화된 것이다. 그러니 노란봉투법이 삼성 노조가 보인 모럴 해저드의 토양이 됐다는 해석은 과하지 않다. 정부도 치우쳐 있다. 정부는 삼성 노조의 파업을 막는 긴급조정권 발동을 택하지 않았고, 김 장관은 “반도체는 공공재”란 말로 중재를 합리화했다. 자신의 신념이 그렇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파업도 방위산업처럼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나쁜 습관이 밴 아이에겐 문제 있는 부모가 있다고 한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 회사의 미래 경쟁력 따윈 안중에도 없는 탐욕 가득한 노조 뒤엔 노사 간 운동장을 완전히 기울게 한 편향된 노동 정책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