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 고직한(72·사단법인 좋은의자 상임대표) 선교사는 어머니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고 선교사의 첫째 아들 하영(45·당시 13세)씨가 하루 종일 잠에 빠져 지내고, 이유 없이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본 뒤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춘기에 접어든 장손을 향한 어머니의 지나친 걱정이리라. 그러나 계절이 바뀌며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불면증이 생긴 아이는 밤새 집안에서 농구공을 튕기며 돌아다니는 등 이상 행동을 반복했다.
" 전형적인 양극성 장애(조울증)증상입니다. "
뒤늦게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기분이 극적으로 오르내리고 수면 패턴이 무너졌을뿐, 평범한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을 먹으면 금세 잠잠해졌다. 고 선교사는 이 병이 잠시 스쳐가는 감기라고 믿고 싶었다.
고직한(72) 선교사는 "양극성 장애(조울증)인 두 아들을 키우며 32년 동안 지옥을 50번 오갔다"고 말한다. 그의 첫째 아들 고하영(45)씨와 둘째 아들 고하림(43)씨는 구독자 2만 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 '조우네 마음약국'을 운영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 아빠, 아무래도 하림이에게 조증이 온 거 같아요. "
10년 뒤. 이번에는 둘째 하림(43·당시 22세)씨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첫째 하영씨였다. “우리 집은 잘 될 거예요”라는 등 긍정적인 말을 맥락 없이 반복하는 동생의 증상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이번만큼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둘째 역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 철렁했죠. 한 명도 아니고, 두 아이 모두 정신 질환 진단을 받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신(神)에게 수도 없이 물었습니다. 왜 하필 우리 가족이냐고요. "
32년이 흐른 지금, 고 선교사 가족은 스스로를 ‘싸이코(PsyKoh) 패밀리’라 소개한다.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담은 단어 ‘사이코(psycho)’의 마지막 글자를 가족의 성(性) ‘고(Koh)’로 바꿨다. 주어진 운명을 웃으며 받아들이겠다는 자기 선언이다.
고 선교사는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열심히다. 두 아들의 정신 질환 동행기를 담은 책 『싸이코 패밀리어도 괜찮아』를 쓰고, 유튜브 채널 ‘조우네 마음약국’도 운영한다. 구독자가 2만 명에 달한다. 이제 고 선교사는 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가족이 아닐 이유도 없네요.” 고 선교사를 만나 물었다.
" 두 아들의 정신 질환으로 주저앉은 당신을 일으켜 세운 건 무엇인가요? "
📌“매일이 지옥이었다” 아버지의 고백
Q : 양극성 장애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우울증과 조증이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적으로 반복되는 기분 장애예요. 우울증과 조현병 양극단 사이에 있는 수많은 스펙트럼 중 하나입니다. 우울증일 때는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가 조증이 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뜹니다. 조증일 땐 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망상이 생기고 행동도 커져요. 증상도 다양합니다. 조증이 더 오래 지속되고 강도가 세면 1형, 경조증(경미한 조증)에 우울증이 길고 강하게 나타나는 걸 2형이라 부릅니다. 두 아들은 모두 양극성 장애 1형 진단을 받았어요.
Q :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나요?
큰아이는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아요. 이 병은 우울감으로 시작되는데, 아이가 그때부터 말수가 줄었어요. 또 잠이 늘고 잘 울었어요. 여름 휴가로 떠난 휴양지에서조차 울더라고요. 그 시기가 우울기였는데, 전 그저 사춘기가 온 줄로만 알고 눈치를 못 챘어요. 반면 둘째는 대학교 2학년 때 느닷없이 쓰나미처럼 덮쳤어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예수’라는 거예요. 장난인 줄 알았는데 그때 이미 우울증을 넘어 조증의 시기로 간 단계였어요.
Q : 둘째는 그 전에 조짐이 없었나요?
워낙 조용한 성격이어서 우울기를 놓쳤던 것 같아요. 이 병은 원래 눈치 채기가 쉽지 않아요. 누구나 기뻤다, 슬펐다 감정이 바뀌게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우울증과 조증이 나타나는 패턴이 사람마다 달라서 예측도 예방도 할 수가 없어요. 마치 예고 없이 강도를 만나는 거나 똑같습니다.
Q : 놀라고 당혹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매일이 지옥이었죠. 특히 조증일 때 힘들었어요. 자아가 강해져서 자신을 영웅화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고, 시비가 붙을 수도 있어요. 잠도 안 자요. 둘째가 특히 심했어요. 밤마다 심야 클럽에 가겠다는 아이를 일단 차에 태워 드라이브를 나갔어요. 기분이 고조된 20대 남자 성인을 태우고 운전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밤새 운전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이가 지쳐 잠들면 아내와 양쪽에서 아이를 부축해 13층 집까지 올라와 침대에 눕힙니다. 조증 때마다 이런 생활을 반복했어요. 한 번은 한강 다리를 건너는데, 그대로 차를 몰아 강으로 뛰어들고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