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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식당엔 없다…볼품 없지만 맛있는 김치밥

중앙일보

2026.05.2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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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빌려온 입맛 ⑤ 김치밥

김치·돼지고기 넣은 슴슴한 밥
집집마다 조리법 미묘하게 달라
손님상 아닌 가족 식탁의 음식

출처: GettyImagesBank

출처: GettyImagesBank

가보지 못한 곳의 맛이 내 취향이 될 때가 있다. 실향민 3세대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물려받은 ‘기억 속의 식탁’을 기록한다. 그 다섯 번째는 김치밥이다.

어떤 음식은 식당에 없다. 여행을 꽤 다녀본 사람들은 그걸 안다. 아니, ‘현지인 맛집’을 검색하고 자신도 관광객이면서 관광객 없는 골목을 찾아다니는 요즘 여행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욕망이라고 비웃는 시선도 있지만,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관광객을 위해 세련되게 다듬어 제한적으로 열어 둔 세계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먹고 살아가는 모습을 맛보고 싶다는 것. 그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알고, 친구가 생기고, 어느 날 불쑥 그 집 식탁에 초대받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을 나도 알고 싶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방인이 앞다투어 방문하는 식당 메뉴판에는 없고,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으며, 초대를 받아야만 열리는 밥상. 그곳에야말로 내가 모르던 진짜 모습이 숨어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다.

이북에서 내려온 집안에는 그런 밥이 있다. 바로 쌀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지은 슴슴한 밥, 김치밥이다. 밥과 김치, 돼지고기라고 하면 K-바비큐로 삼겹살과 상추쌈을 세계에 알린 한국인의 익숙한 조합 같지만, 김치밥의 다른 점은 밥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곁들이거나 볶는 것이 아니라 아예 쌀을 지을 때부터 김치와 돼지고기를 함께 넣는다는 데 있다. 짠지밥이라고도 불리는 김치밥은 특히 쌀농사를 많이 지은 황해도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식이라고 한다.

실제로 김치밥 이야기를 들려준 지인 중에는 황해도, 혹은 평안도 출신 조부모를 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함경도 출신 아버지와 원산 출신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우리 어머니 역시 즐겨 먹었던 걸 보면, 널리 먹던 음식이었던 듯하다.

이 음식이야말로 진짜 집밥이라고 느껴지는 건, 실향민 2세대와 3세대를 인터뷰할 때마다 이 단순한 김치밥조차 집집마다 짓는 방식이 김치찌개만큼이나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잘게 썬 돼지고기를 달달 볶다가 기름이 배어 나오면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함께 볶았다. 그 뒤 불린 쌀과 물을 부어 밥을 지었다. 쌀이 바닥에 눌어붙는 대신 고기가 노릇해지도록 바닥에 깔았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한 지인은 자기네 집에서는 불린 쌀 위에 생고기를 그대로 김치와 함께 올려 밥을 지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어느 집이든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비계가 어느 정도 붙은 부위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요즘에야 삼겹살 주세요, 앞다릿살 달라고 하고 이야기하지만, 그땐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돼지고기에 비계 좀 섞어서 달라고 하는 거지. 어머니가 정육점에 미리 주문을 넣어두면 난 그냥 가지러 갔고. 지금은 칼로리가 높다고 기름진 고기를 꺼리지만, 그때는 비계가 좀 있어야 제대로 된 고기 취급을 했거든.”

실제로 갓 지은 김치밥을 밥주걱으로 쓱쓱 비벼 밥과 돼지고기, 김치를 섞으면 살짝 연주홍빛으로 물든 밥알에 은은한 기름기가 감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독립한 지금의 내 주방에서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어떤 고기를 넣어야 맛있느냐고 묻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기름기 있는 부위를 추천했다.

“이북에서 온 어르신들의 돼지비계 사랑은 상상 이상이라 경험해봐야 알아요. 우리 집에서는 보통 목살을 넣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삼겹살을 넣어서 기름이 자글자글 흐르게 만들었을 때가 진짜 인기였어요. 콩나물은 있으면 넣고, 없으면 빼고. 작가님 어머님은 양념장을 안 넣었다면서요? 우리 집은 양념간장을 곁들여 먹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2세대인 어머니가 덧붙인 방식일 수도 있겠네요.”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귀했을 돼지고기가 ‘숭덩숭덩’ 들어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김치밥을 손님상에 내는 음식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제대로 차린 저녁상이라기보다 가족끼리 편하게 나눠 먹던 음식에 가까웠다고들 했다.

“어머니랑 언니들이 둘러앉아 쓱쓱 비벼서 한 그릇씩 퍼먹었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께는 제대로 상을 차려 드려야 했으니까 같이 식사로 드렸던 것 같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비빔밥처럼 보이니까 모양새가 좀 그랬던 거지.”

평안도 실향민 체육대회에 갔던 추억을 신나게 들려주던 지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손님이 왔을 때 ‘김치밥을 내자’고 결정하기엔 위험 요소가 많은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맛은 분명 좋지만 물 조절을 조금만 잘못하거나 콩나물에서 수분이 많이 나오면 밥이 질어지기 쉽고, 그렇게 되면 희미한 색의 김치와 돼지고기가 뒤섞여 모양이 썩 예쁘지 않았다고. 그래서 오히려 가족끼리 편하게 먹는 음식이었다고 회상했다. 대신 “식어도 약밥처럼 맛있었다”며, 식은 김치밥을 주먹밥처럼 뭉쳐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들려줬다.

그 이야기를 듣자 문득 어머니에게 여러 번 들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결혼한 뒤, 자취하던 도련님이 빨래를 부탁하러 신혼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나름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밥을 지었다. 하지만 부산에서 자라 김치밥을 처음 본 도련님은 그걸 찬밥에 김치를 비벼낸 음식으로 오해해 잠시 머뭇거렸다고 한다. 이내 오해를 풀고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였는데도 나는 오랫동안 그게 김치볶음밥 이야기인 줄 알았다. 김치밥을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자란 도련님은 그날 처음 김치밥을 먹었다. 초대를 받아, 그 집 부엌 안으로 들어온 날이었으니까. 어떤 음식은 그렇게 열린다. 볼품없지만 맛있는 밥을, 이제 가족이니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면서.



정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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