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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런던에 스며든 솔잎 향, 한식의 경계 뛰어넘다

중앙일보

2026.05.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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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셰프 식탁 이야기 ① 영국 런던 ‘솔잎’ 박웅철·기보미 셰프

한국·영국 식재료 어우러진 현대 요리
재료 본연의 맛·질감 집중해 풍미 살려
한국인 최초 런던서 미쉐린 스타 획득

‘솔잎(Sollip)’을 운영 중인 박웅철·기보미 셰프.  [사진 솔잎]

‘솔잎(Sollip)’을 운영 중인 박웅철·기보미 셰프. [사진 솔잎]

낯선 도시의 주방에서 한국인 셰프들은 오늘도 자신만의 요리를 만든다. ‘K-셰프’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셰프들의 음식과 삶, 그리고 타국의 식탁에서 이어가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첫 번째는 영국 런던 솔잎(Sollip)의 박웅철·기보미 셰프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런던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곳이다. 역할을 다한 발전소는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거리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취향이 뒤섞인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마켓에는 탐스러운 꽃과 빵, 치즈와 향신료가 가득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도시를 채워간다.

이 거대한 도시 안에서 한국인 셰프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웅철·기보미 부부도 그중 하나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솔잎(Sollip)’은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런던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곳이다. 흥미로운 건 솔잎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한식당과는 사뭇 다른 결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에서 만나 요리사의 삶을 이어 온 두 사람은 서울과 부산, 제주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특정한 장르나 국적 안에 머물기보다 자신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맛을 찾아 이동해온 셈이다. 기존의 방식과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어쩌면 두 셰프의 삶은 오늘날의 ‘노마드(Nomad)’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많은 사람은 ‘솔잎’이라는 이름과 한국인 셰프라는 배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식을 떠올리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요리는 단순히 한식이라는 범주 안에 머물지 않는다. 레스토랑 이름인 ‘솔잎’은 전통적으로 불과 연기를 세밀하게 다루며 가장 각별한 정성이 필요한 요리를 준비할 때 솔잎을 사용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이름 안에는 자신들의 뿌리와 감각을 꾸밈없이 담아내고자 한 의지가 담겨 있다.

솔잎 내부 전경. [사진 솔잎]

솔잎 내부 전경. [사진 솔잎]

한국과 르 꼬르동 블루 런던(Le Cordon Bleu London)에서 이어 온 두 셰프의 프렌치 테크닉은 정교한 기술과 섬세한 감각으로 이어지고, 그 위에 한국 식재료와 정서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감태와 들기름, 유자와 막걸리처럼 한국에서 공수한 재료들과 영국 현지 농장의 식재료는 하나의 코스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질감과 향으로 다시 연결된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낯선 방식으로, 현지인에게는 새로운 향으로 다가가는 요리다. 특정한 전통을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런던이라는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보다 유연한 현대 요리에 가깝다.



레스토랑이 자리한 버러마켓(Borough Market)

일대는 런던에서도 가장 활기찬 미식 지역 가운데 하나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뒤섞이고, 거리 곳곳에는 빵과 커피, 향신료의 냄새가 층층이 쌓인다. 솔잎은 그 한편에서 차분하지만 단단한 분위기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몇 해 전 오픈을 준비하던 시기의 솔잎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끝내 요리를 맛보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공간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전에도 제주에서 열린 협업 디너를 통해 몇몇 요리를 경험한 적은 있었지만, 두 셰프가 오랜 시간 다듬어온 공간 안에서 한 코스를 온전히 경험하는 일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6개월 이상 숙성한 김치와 무로 만든 ‘무 타탱’. [사진 솔잎]

6개월 이상 숙성한 김치와 무로 만든 ‘무 타탱’. [사진 솔잎]

박웅철 셰프의 요리는 불필요한 장식보다 재료 본연의 맛과 질감에 집중한다. 오픈 이래 대표 메뉴로서 세 번째 버전을 맞이한 ‘무 타탱’은 6개월 이상 발효시킨 김치와 무를 이용해 세이보리타탱을 만들고, 술지게미를 활용한 양파 수비즈(Soubise)를 곁들여 낸다.

차콜 위에서 구워낸 오리 요리. [사진 솔잎]

차콜 위에서 구워낸 오리 요리. [사진 솔잎]

 돼지감자와 버섯 등을 채운 만두. [사진 솔잎]

돼지감자와 버섯 등을 채운 만두. [사진 솔잎]

차콜 위에서 구워낸 오리는 발효 모과 글레이즈와 오리 주, 펜넬 김치와 순무가 더해지며 익숙하면서도 예상하기 어려운 조합을 보여준다. 유난히 새로움을 강조하지 않지만 한입 안에서 드러나는 맛의 방향성은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 만두 역시 인상적이다. 돼지감자로 만든 만두 안에는 진하게 졸여 고기 같은 식감을 낸 표고버섯 밑동과 돼지감자, 제철 버섯을 채웠다. 돼지감자 크럼블과 1년 숙성한 어니언 케이퍼를 더한 뒤 구수한 돼지감자 브로스를 부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풍미 하나가 전체의 맛을 단단하게 끌어올린다. 익숙한 형태 안에 낯선 깊이를 숨겨둔 듯한 요리다.

 묵직한 고소함이 인상적인 ‘블랙 팽 페르뒤’. [사진 솔잎]

묵직한 고소함이 인상적인 ‘블랙 팽 페르뒤’. [사진 솔잎]

디저트를 맡고 있는 기보미 셰프의 요리는 또 다른 결의 섬세함으로 이어진다. 검게 구운 팽 페르뒤 위에 서리태 아이스크림과 태운 바닐라 소스를 더한 ‘블랙 팽 페르뒤(Black Pain Perdu)’는 묵직한 고소함과 쌉쌀한 풍미를 남긴다. 반대로 발효한 포멜로와 불수감, 감잎차를 활용한 디저트는 맑고 투명한 인상으로 마무리된다. 향과 색, 식감의 균형이 정교하게 이어지면서도 과하지 않다.

굳이 ‘한식’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솔잎에서 두 셰프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한국의 맛과 정서, 그리고 오랜 시간 쌓아온 기억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었다. 특정 장르 안에 자신을 가두기보다, 지금의 런던 안에서 가장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맛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감각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오래 남는다.



김혜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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