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선수한테 “백도어 할까” 되물었다…‘실패한 감독’의 우승 비결

중앙일보

2026.05.29 14:00 2026.05.29 14:27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프로농구 우승 ‘0%의 기적’ 이상민 KCC 감독

감독으로 처음 거머쥔 우승 트로피를 든 이상민. 우상조 기자

감독으로 처음 거머쥔 우승 트로피를 든 이상민. 우상조 기자

프로농구 부산 KCC의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을 모두 합쳐도, 현역 시절 이상민(54) 한 명이 뿜어냈던 ‘스타성’과는 비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오빠 부대’ 신드롬을 몰고 왔던 그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감독 이상민은 달랐다. 서울 삼성 사령탑 시절이던 2014년부터 8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스스로를 ‘실패한 감독’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 시즌 부산 KCC를 맡아 정규리그 6위 팀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을 제패하는 ‘0%의 기적’을 일궈냈다. 프로농구 최초로 한 팀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하는 대기록의 순간이었다. 이상민은 2003-04엔 선수로, 2023-2024엔 코치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와 성공을 가른 건 무엇이었을까. 이상민 리더십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주 경기도 용인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선수 각자가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해 ‘작전 토론’으로 불린 작전 타임 때 풍경부터 물었다. 가드 허훈이 광고판에 걸터앉아 “쟤들 스페인 픽앤롤(이중 스크린 전술)만 한다니까요”라고 외치거나, 이 감독이 “백도어 하자고?”라고 반응하는 식이었다.


Q :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작전을 짜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허훈은 “감독님이 짜놓은 100의 틀 안에서 20 정도 의견을 보탠 것뿐”이라고 했더라.
A :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우승하지 못했다면 ‘선수들에게 휘둘리고 장악력이 부족한 감독’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거다.(웃음) 사실 (허)훈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온 편한 사이다. 밖에서 보기엔 사령탑의 권위가 떨어져 보였을지 몰라도, 가드 출신인 제 경험상 코트 위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가드가 감독이 미처 보지 못한 흐름을 포착했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기보다 즉시 소통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 대기록
KCC를 챔프전 우승으로 이끈 뒤 선수들로부터 헹가레를 받았다. [뉴시스]

KCC를 챔프전 우승으로 이끈 뒤 선수들로부터 헹가레를 받았다. [뉴시스]


Q : 2008-09시즌 서울 삼성 선수 시절의 영상이 팬들 사이에서 다시 화제다. 안준호 당시 감독의 작전 지시에 선수 이상민이 단호하게 “안 돼”라고 답하는 장면인데.
A : “이게 바로 인과응보인가 싶기도 하다(웃음). 사실 전 제가 나온 옛날 영상을 찾아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우리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이득이니까. 저 역시 신선우·허재·안준호 감독님 같은 명장들의 지도를 받았는데, 세 분 모두 감정적으로 화를 내며 선수들을 억누르는 스타일은 아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Q : 본인 스스로가 최고 정점에 섰던 ‘S급’ 선수 출신이기에 스타 선수들의 심리와 언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 아닐까.
A : “저희 때는 최고를 ‘A급’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S급’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지금의 MZ세대 선수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호불호의 표현이 확실하다. 구단 관계자도 ‘요즘 일반 회사 분위기가 그런데, 운동선수들도 그러냐’며 놀라곤 한다. 저 역시 그 위치에 서봤던 기억이 있고, 시대와 아이들의 성향에 맞게 눈높이를 맞춘 거다.”


Q : 선수들에게 패턴 플레이를 지시할 때 다소 생소한 단어들을 외치더라.
A : “‘람머스’ ‘말파이트’ ‘혼’ 같은 단어들이다. 시즌 전에 선수들이 패턴 이름을 하나·둘·셋으로 부르면 촌스럽다고 하더라. 자기들이 즐겨하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캐릭터나 스킬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 하길래 수용했다. 저는 게임을 할 줄은 모르지만 페이커의 경기는 챙겨본다. 유심히 보니 탑·정글·미드·바텀·서포터 등 다섯 가지 포지션의 선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유기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캐릭터별 장단점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농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Q : 숀 롱 선수는 전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토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 : “우리 팀에는 달래야 할 ‘아이’가 둘 있는 셈이라, 늘 막대사탕을 쥐고 다녀야 하는 심정이었다(웃음). 숀 롱에게는 ‘훈이가 엄마 역할을 하니, 네가 듬직한 아빠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반면 (허)웅이에게는 ‘대한민국에서 농구를 가장 잘했던 아버지(허재)처럼 간결하게 농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허재 형이 전화를 걸어와 ‘고집 센 웅이 녀석, 화려한 드리블 좀 제발 그만하게 잡아달라’며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 친정팀(KCC)을 떠나 삼성에서 선수 시절을 마무리했고 감독이 됐다. 삼성 감독 시절을 두고 그는 ‘내가 감독으로서 자질이 정말 없는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선수 시절에는 파이널에만 7번을 가봤는데, 감독이 된 후 매번 패배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KCC에 코치로 돌아왔다.

“2007년 사실상 내처졌던 그 당시 솔직한 심정으로는 서운함이 있었지만, 냉정한 프로의 세계이니 이내 이해하게 됐다. 만약 다른 팀에서 감독 제의가 왔다면 고심했겠지만, 고향과도 같은 KCC였기에 선택했다. 제 농구 인생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고(故) 정상영 명예회장님께서 생전에 늘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고, 선수단 역시 ‘감독님의 한을 풀어드리자’며 고맙게도 똘똘 뭉쳐주었다. 저는 구단과 선수들이 완벽하게 깔아준 멍석 위에서 그저 즐겁게 춤을 추었을 뿐이다.”


Q : 이번 플레이오프 현장에서도 ‘나이가 있는’ 여성 팬들이 “오빠!”를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A : “한동안 코트에서 보이지 않던 예전 팬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아와 열성적으로 응원해주셨다. 다들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오셨더라. 여전히 저를 잊지 않고 찾아와 ‘오빠의 우승을 현장에서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고마움이 밀려왔다.”


Q :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 성나정이 열광하는 연세대 농구부 가드였다. 당시 극성팬들이 남자 화장실까지 쫓아올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는데.
A : “당시 서대문우체국에는 저희 숙소와 집으로 배달되는 팬레터와 소포만 전담해서 나르는 차량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대중문화계에서 출연 제의도 많았고, 농구 붐을 위해 고려해보기도 했지만 사정상 고사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작가분들이 이미 저를 모델로 대본을 집필해 두신 상태라 내용을 바꿀 수 없었다고 하더라.”


Q : 지금의 허웅·허훈 형제와 인기를 비교한다면 어떠냐.
A : “두 선수 모두 팬들이 많아서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큰일 난다(웃음). 솔직히 제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평소 내성적이지만, 코트에만 들어서면 무서운 승부사로 돌변하는 반전 매력이 보호 본능과 팬심을 자극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Q :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문경은·추승균은 “슈터의 발 스텝까지 정확히 읽고 패스 타이밍을 맞춰주는 역대 최고의 가드”라고 극찬했다.
A : “아무리 정교한 패스를 찔러 넣어준다고 해도 슈터가 그것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대 최고의 슈터들과 오랜 시간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행운이었다.”

고1 때부터 한방 쓴 서정훈과는 절친
농구 국가대표 시절 이상민. [중앙포토]

농구 국가대표 시절 이상민. [중앙포토]


Q : 전성기 시절의 이상민이 지금의 허훈과 일대일 맞대결을 펼친다면.
A : “시대도, 농구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과거 NBA의 제이슨 키드와 지금의 타이리스 할리버튼을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스테판 커리의 등장 이후 현대 농구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요즘 가드들은 3점슛 위주의 강력한 공격 성향을 띤다. 저는 중학생 시절 장충체육관에서 유재학 선배의 플레이를 보며 가드의 꿈을 키웠다. 저희 때는 코트에서 백드리블을 하면 ‘날라리 농구’를 한다며 질책을 받던 시절이라, 요즘 같은 유로 스텝(수비수 앞에서 지그재그로 방향을 전환해 수비수를 제치고 골밑으로 파고드는 기술)은 상상도 못 했다. 최희암 감독님 밑에서 저는 굳이 슛을 쏘지 않아도 날카로운 패스만 넣어주면 됐지만, 훈이는 본래 공격 성향이 매우 강한 선수다. 그럼에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개인 욕심을 내려놓고 수비와 리딩에 헌신해 준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Q : 농구계 후배이자 예능인으로 활약 중인 서장훈 선수와는 절친한 사이다.
A : “고1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방을 함께 썼다. 장훈이는 제가 KCC에서마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지도자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이 남을 수 있다며 누구보다 걱정해 주었다. 방송 스케줄로 바쁜 와중에도 저희 팀의 모든 경기를 재방송으로라도 모니터링해줬다. 레전드 센터의 시각에서 냉철하게 문제점을 피드백해 준 것이 팀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다만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기본 한 시간 반 동안 붙잡혀 있어야 해서 조금 힘들었지만(웃음). 챔프전 2차전이 끝난 후에는 직접 라커룸으로 찾아와 선수들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





박린([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