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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손가락 ‘한총련 그놈’…호프집 20곳 돌며 성폭행했다

중앙일보

2026.05.29 14:00 2026.05.2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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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베테랑-끝까지 잡는다
“전국 베테랑 형사들이 직접 꺼낸 단 하나의 ‘크라임 신’”

중앙일보와 경찰청이 협업해 사건 해결의 결정적 장면을 베테랑 형사들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형사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순도 100% 진짜 사건. 작은 티끌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베테랑들의 집념과 생생한 추적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이 기사는 임병순 형사의 구술을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광주 문흥동 호프집 강도살인 사건 1화 요약
2003년 8월 22일 오전 7시쯤 광주 광역시 문흥동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이 흉기에 찔려 죽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광주 북부경찰서 강력반 전체가 출동했고 전담 수사팀을 꾸려 약 50일간 추적에 나섰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제대로 된 조각 지문도 없었고, 현장 인근의 폐쇄회로(CC)TV도 없었던 탓이다.

결국 다른 수사팀에 배치된 임병순 경사는 남몰래 수사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정보원으로부터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제보받게 되고 피해자로부터 수사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임 경사는 과학수사팀의 가까운 동료와 함께 범인의 꼬리를 결국 밟게 된다. 그의 이름은 박덕진.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한총련’ 간부였다.

하지만 이름과 주소까지 파악했음에도 성과는 없었다. 그의 어머니도 행방을 몰랐고, 학생운동 동료들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후배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심하던 임 경사는 결국 마지막 수단을 쓰려고 하는데….

‘아홉 손가락’ 운동권 거물 그놈, 호프집 女주인 겁탈 후 죽였다 [上]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7306

#4. 세이클럽 고스톱 게임과 짱구 PC방

2003년 10월 초, 사건 발생 약 50일 후.

“성곤아, 잠자코 기다려봐라잉.”

‘호프집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 박덕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사가 또다시 벽에 가로막힌 이 순간, 임 경사가 꺼내 든 최후의 카드. 그것은 시간 날 때마다 군 헌병대에 가서 열심히 배워온 ‘탈영병 추적 기법’이었다. 당시 군에선 ‘ 컨펌투 사이트’를 활용해 탈영병의 인터넷 접속 기록을 파악하고 추적에 활용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컨펌투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특채로 뽑힌 전자공학과 출신의 일부 형사들만 암암리에 쓰곤 했다. 협박 메일 등을 보낸 범인을 쫓기 위해서였다.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과 이메일 사용이 급증하던 시기다. 이에 이메일 마케팅 및 리스트 관리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도 여럿 등장했다.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던 ‘컨펌투 사이트’도 이 중 하나였다. 사이트에 특정인의 인적 사항을 입력하면, 포털 사이트 전체를 일괄 검색해 그 사람의 이메일을 확인해줬다. 이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제시하면 특정인의 IP, 즉 접속 위치까지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다만 공식적인 루트가 아니어서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군에서 이러한 사이트와 추적 방법을 몰래 배워온 임 경사는 얼마 안 되는 경찰 월급을 다 털어넣어 사이버 머니를 충전했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하루빨리 박덕진을 붙잡아 가두고 싶었다.

[email protected]

세이클럽에서 운영하던 고스톱 게임. 중앙포토

세이클럽에서 운영하던 고스톱 게임. 중앙포토


추적 결과, 놈의 ‘세이클럽’ 이메일 하나를 찾아냈다. 박덕진은 이메일로 세이클럽 사이트 하위 사이트인 세이게임에 접속해 고스톱 게임을 즐겨 했다. 명의가 도용된 것만 아니라면, 그가 이 이메일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결정적 단서는 하나 더 있었다.
그가 자주 접속하던 위치는 조선대학교 후문 ‘해방촌’이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형성된 지역이라 해방촌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후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일던 곳이기도 했다.

" 이야. 여기 데모 겁나게 하던 곳인디, 확실허네. "

임 경사는 마지막 카드가 먹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덕진도 만만찮았다. 범행 이후부터 광주 내에서 그의 이메일로 접속이 이뤄진 기록은 없었다. 임 경사는 일단 그가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고, 과거 접속했던 장소를 하나하나 모았다. PC방이 다수였다. 전국 지도 위에 그가 접속했던 PC방 위치도 하나하나 점으로 찍어 표시했다.

그런데, 임 경사와 이 경장은 또 한 번 호프집 주인의 ‘섬찟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박덕진이 접속했던 PC방 인근 지역의 사건들을 찾아본 결과, ‘호프집 강도살인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빨리 잡지 않으면 몇 명의 피해자가 더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 타들어 갔다.


다행인 건 PC방의 경우 고정된 IP 주소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박덕진이 PC방에서 이메일로 접속한다면, 언제 몇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까지 파악이 가능했다. 현재 박덕진은 도주 중이며 휴대전화도 끊긴 상태. 임 경사는 반드시 PC방, 그것도 익숙한 광주 내 PC방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온라인 공간의 ‘덫’을 펼쳐 놓은 채 박덕진이 걸려들기만을 끈질기게 기다렸다.

며칠 뒤인 2003년 10월 15일, 사건 발생 54일 후.
어스름한 저녁. ‘띠링’ 알림소리가 울렸다. 임 경사가 쳐놓은 덫이 작동했다.
드디어 박덕진의 이메일로 로그인한 컴퓨터의 IP 주소가 확인됐다는 뜻이었다. 위치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 병원 맞은편 ‘짱구 PC방’. 임 경사는 후배 형사들을 불렀다.

“성곤아, 얼른 수갑 챙기라잉.”
임 경사와 형사들은 한달음에 PC방으로 달려갔다. 우선은 손님인 척 내부를 둘러봤다. 1번, 2번, 3번… 그리고 퀴퀴한 담배 냄새를 뚫고 마주한 42번 자리. 그곳엔 모자를 푹 눌러 쓴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박덕진(가명)이 자주 찾던 PC방 인근 골목의 모습. 광주=김정재 기자

박덕진(가명)이 자주 찾던 PC방 인근 골목의 모습. 광주=김정재 기자


" 집게손가락이 없으면 바로 덮치는 거여. "

임 경사는 출동 전 동료들에게 한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42번 자리 뒤에 서서, 책상 아래 늘어져 있던 왼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스르르’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잡고 한참 고스톱을 치던 42번 자리의 남성이 키보드를 향해 천천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찰나의 순간, 임 경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방울의 우려가 공기 중으로 증발했다.

" 박덕진이!! "

임 경사는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42번 자리의 남성은 깜짝 놀란 듯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형사들이 그의 뒷목을 잡고 책상 위를 향해 고개를 내리눌렀다.

" 수갑! 얼른 수갑 채워! "

#5. 고도의 심리전

박덕진을 차에 태운 임 경사와 이 경장은 약속한 듯 말을 아꼈다. 심증은 확실하지만 빼도 박도 못 할, 결정적인 물증은 없었다. 그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경찰서로 가는 내내 무거운 침묵이 차 안을 지배했다. 경찰서에 거의 다 와 갈 무렵이 돼서야, 박덕진이 받는 압박감이 절정을 향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한 임 경사가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짧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왜 온 줄 다 알제?”
“잘 모르겠는디요.”
“이놈아, 네가 그동안 한 짓거리가 있잖냐.”
“….”

수확은 없었다. 일단 잡아떼기로 한 모양이었다. 북부서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박덕진을 바로 형사계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수차례 경찰 조사를 받아봤던 인물.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시종일관 침묵이었다.

“박덕진, 끝까지 입을 안 열면 너만 어려워질 거여. 인간 대접을 받고 싶은가 짐승 취급을 받고 싶은가, 하나만 골라라잉.”
“….”

형사와 용의자의 대화는 때론 전쟁 같고, 때론 남녀 사이의 연애 같기도 하다. 임 경사와 박덕진은 이날 밤새 치열한 대결과 ‘밀당’을 이어갔지만 특별히 진전은 없었다.

결정타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임 경사는 그에게 ‘죄악 지도’를 내밀었다. 태연했던 박덕진의 얼굴은 공황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의 모습처럼 변했다.

뒤이어 조사실로 들어간 이 경장은 먼저 따뜻한 차를 건넸다. 그러곤 별다른 말 없이, 지긋이 박덕진을 바라봤다.

(계속)

“네가 한때는 민주화를 위해서 정의롭게 노력도 한 인물 아니냐.”
그때였다. 눈빛이 변한 박덕진의 입이 열렸다.
그가 쏟아낸 충격적인 진술, 형사는 섬찟해졌다.


※형사들은 왜 소름이 돋았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9301


김정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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