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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전쟁 ‘칼마카세’를 내 집 주방으로, 신현도 셰프의 맛있는 독백 [쿠킹]

중앙일보

2026.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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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에서 칼마카세로 활약한 모노로그의 신현도 셰프. [사진 모노로그]

흑백요리사에서 칼마카세로 활약한 모노로그의 신현도 셰프. [사진 모노로그]


어두운 무대 위, 핀 조명이 켜진다. 정적을 가르듯 날카로운 칼날이 생선 위를 미끄러진다. 정교한 칼집이 새겨지고, 조명이 서서히 걷히면 무대 위에 홀로 남은 요리사의 독백은 어느새 한 그릇의 요리가 되어 손님 앞에 놓인다.

신현도 셰프는 레스토랑을 하나의 연극 무대로 봤다. 넓은 무대를 홀로 채우며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의 모습에서 요리사의 숙명을 발견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독한 주방 안에서, 오직 자신의 요리와 철학만으로 손님과 마주해야 하는 점이 닮았다고 느꼈다. 일식 파인다이닝 ‘모노로그(Monologue)’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공간에서 제철 식재료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하나의 서사가 된다. 신 셰프는 요리사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접 재료를 재배하지는 않지만, 산지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역할 또한 요리사의 몫이라는 의미다.

“농부에게 식재료를 받을 때, 기후와 토양, 수분감 등 산지의 세세한 정보까지 함께 받아요. 그래야 재료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조리법을 고민해 손님상에 올리고, 그 안에 담긴 산지의 이야기도 함께 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셰프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묵묵히 주방에서 자신만의 '1인극'을 이어가던 신 셰프를 움직인 것은 오랜 단골손님들이었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보다 셰프님 요리가 훨씬 맛있다"는 단골들의 칭찬을 대중 앞에 당당히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그는 넷플릭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을 결심했다.

“1등을 못 해서 단골손님 기대에 부응을 못 해 아쉽지만, 프로그램을 보시면서 재미있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일부러 매장에서 자주 선보였던 메뉴를 만들었어요. 보시면서 '나 저거 먹어봤는데' 하시라고요.”

'칼마카세'로 화제성을 얻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주방의 본질이라며, 자신의 무대를 묵묵히 지키고 진정성 있는 요리로 손님과 소통하고 싶다는 그를 지글지글클럽 영상제작 현장에서 만났다.



Q : 일식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일식은 '빼는 맛'이다. 프렌치가 다양한 재료와 소스를 겹겹이 더해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낸다면, 일식은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재료 본연의 맛을 직관적으로 남겨둔다. 육수를 낼 때도 다시마와 가쓰오부시의 깔끔한 감칠맛만 쏙 빼내는 식이다. 이 단순함과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힘에 매료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만난 스승님 덕분에 '재료에 힘이 실린 요리를 하자'는 나만의 요리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Q : 스승님에게 배운 '재료에 힘이 실린 요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가르침이었나.
요리사는 누구나 자신만의 뚜렷한 요리관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주 농장을 찾아가 식재료를 확인하고 좋은 식재료를 대하는 스승의 모습에서, 재료가 주(主)가 되는 힘 있는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술이나 소스로 재료의 단점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전국의 산지를 찾아 돌아다닌다. 최근에는 경남 밀양에서 은어를 키우는 분을 만나러 다녀왔다. 생산자를 만나 커피 한 잔 나누며 식재료가 자라는 환경을 눈으로 보고 오면, 그 재료를 주방에서 마주했을 때의 마음가짐부터 확 달라진다. '이 정성 어린 재료를 어떻게 하면 가장 돋보이게 요리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서울에만 있으면 팍팍할 수 있는 일상인데, 좋은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여정 자체가 나에게는 요리 공부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큰 즐거움이다.
정통 일식에 한국적이고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접목한 모노로그의 메뉴. [사진 모노로그]

정통 일식에 한국적이고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접목한 모노로그의 메뉴. [사진 모노로그]



Q : 추구하는 일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일본에는 없는 일식’이라고 들었다.
정통 일식의 훌륭한 조리 기술을 베이스로 삼되, 봄에 나는 냉이나 달래, 원추리 같은 가장 한국적이고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야키(구이)나 튀김 요리에 과감하게 접목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인에게는 정서적으로 익숙한 맛이면서 조리법은 정교한 일식인, 그래서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먹어봐도 "일본 현지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독창적인 요리"라고 느낄 수 있는 오마카세 코스를 지향하고 있다.


Q : 이자카야 ‘히카리모노’와 라면 전문점 ‘멘쇼쿠’ 등 대중적인 매장들을 잇달아 오픈했다. 매장 확장을 결심한 배경이 궁금하다.
무대 위에서 멋진 연극을 계속 이어가려면, 결국 그 극장이 망하지 않아야 한다. 요리사에게 주방이 연극 무대라면, 경영은 그 무대를 지탱하는 극장 운영과 같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 철학이 있어도 숫자를 보지 못하고 매장이 문을 닫으면 그 철학을 선보일 기회조차 사라진다. 또한, 역량이 차오른 팀원들에게 책임 관리자 역할을 맡겨 숫자를 보는 법과 경영을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래야 나중에 독립해서도 실패하지 않으니까.

최근 광화문에 문을 연 ‘히카리모노’는 ‘도심 속에서 떠나는 일본 미식 여행’이라는 콘셉트의 이자카야다. 후쿠오카의 모츠나베, 나고야의 테바사키(닭날개 튀김) 등 일본 지역별 명물 요리들을 선보이되, 식재료는 제주 흑돼지, 광주 토종닭 등 철저하게 우리나라 최고의 토종 식재료로 대체해 구현했다.

자가제면 라면 전문점인 ‘멘쇼쿠’는 ‘면으로 하는 즐거운 식사’라는 뜻이다. 오마카세 코스 요리가 작은 오점 하나로 전체가 평가받기 쉬운 반면, 라면은 오롯이 ‘한 그릇’으로 손님과 정면 승부하고 평가받는 매력이 있어 도전하게 됐다. 겨울에는 깊고 진한 곰탕 계열 육수를, 여름에는 냉면처럼 깔끔한 육수를 선보이는 등 제철에 맞게 육수 베이스를 바꾸며 요리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요리를 배워요'에서 신현도 셰프가 선보인 육우 스지 된장조림. [사진 지글지글클럽]

'요리를 배워요'에서 신현도 셰프가 선보인 육우 스지 된장조림. [사진 지글지글클럽]



Q : 지글지글 클럽의 ‘요리를 배워요’ 콘텐츠에 참여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방송에서는 나의 요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철학이 많이 편집되어 셰프로서 아쉬움이 컸다. 요리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무엇보다 지글지글 클럽의 ‘요리를 배워요’는 파인다이닝의 높은 문턱을 낮춰, 제 요리를 독자분들의 주방으로 직접 배달해 준다는 취지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사실 일식이라고 하면 집에서 하기 어렵고 거창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번 클래스에서는 집에서도 셰프의 맛을 그대로 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주방에서 터득한 '숨은 치트키(꿀팁)'들을 아낌없이 담았다. 요리에는 정답이 없다.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가이드라인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과 스타일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꼭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다.

황정옥 기자 [email protected]


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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