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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28대 3으로 지고 있다면"…美졸업식 빛낸 '인생 전술'

연합뉴스

2026.05.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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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28대 3으로 지고 있다면"…美졸업식 빛낸 '인생 전술'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통계적 패배 확률 99.7%. 미국 미식축구의 전설 톰 브래디가 기억하는 2017년 슈퍼볼 당시 스코어는 '28대 3'이었다. 상대의 승리는 기정사실처럼 보였고, 그의 낙관주의는 고작 0.3%였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조지타운대 경영대 졸업식 단상에 선 그는 그때의 생존 전술을 이렇게 전했다.
"인생에서 28대 3으로 지고 있는 순간이 오면 두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포기하거나, 아니면 죽기 살기로 싸우거나(fight your ass off)입니다."
5월의 미국은 대학 졸업철이다. 뉴욕 맨해튼에서도 컬럼비아대, 뉴욕대(NYU) 등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착용한 학생들이 곳곳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더 화려한 이력과 스펙을 쌓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다.
졸업식은 학업의 마침표를 찍는 자리를 넘어,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당대의 리더들이 마지막 조언과 당부를 건네는 무대이기도 하다. 올해 졸업식에서 유독 눈에 띈 화두는 '인간성'이었다.

특히 하버드 단상에 선 방송인 코넌 오브라이언의 축사가 가장 화제를 모았다.
자신의 표현대로 '호그와트의 마법 물약 교수' 같은 가운을 입고 등장한 그는 특유의 냉소와 위트로 엄숙한 식장을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 연방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는 하버드대의 민감한 상황을 정면으로 언급했다.
대학 시절 부실한 기숙사 침대와 학식을 이유로 "나 역시 하버드를 고소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내 주장이 미 대통령이 제기한 소송들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좌중을 쓰러뜨렸다.
외국인 학생 제한 등 반(反)이민 기조를 보이는 워싱턴을 향해서도 "그 어떤 외국인이 미국 문화에 기여한 적이 있단 말인가? 음악, 문학, 미술, 요리, 패션, 건축, 무용, 과학적 돌파구, 우리의 도덕적 규범과 윤리적 신념의 핵심을 제외하고 말이다"라고 반어적으로 꼬집었다.
이처럼 화려한 '빌드업'을 거친 그의 마지막 말은 반전이었다.
그는 방송 경력을 시작할 당시 언론이 자신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실은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것뿐이었다며 이는 코미디언에게 사형 선고와 같았다고 털어놨다.
오브라이언은 "이제 세월이 흐른 뒤 깨달은 것은 하버드가 누군가가 저에 대해 아는 '마지막 사실'이 되어도 괜찮다는 점"이라며 "제 소망은 하버드가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 아는 마지막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버드가 여러분에 대해 아는 '가장 덜 중요한 사실'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고 학부의 졸업장을 쥐여주는 자리에서, 그 간판의 무게를 가장 가볍게 취급하라는 당부였다.
애플 공동 창립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미시간주 그랜드 밸리 주립대 졸업식에서 "AI(Artificial Intelligence)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모두 최고의 AI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실제 지능'(Actual Intelligence) 말입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평생 인간의 뇌를 복제하려 애쓰던 엔지니어들을 지켜봤다며 "결국 뇌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긴 했죠…딱 9개월 걸리더군요."라는 재치를 보였다. 기술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가치를 지켜내라는 격려였다.
다시 브래디의 얘기로 돌아가 보면, 그는 실패를 대하는 멘탈 관리법으로 "힘든 선택은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벽돌이 되지만, 여러분이 대는 모든 핑계는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는 벽의 벽돌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2000년 프로 드래프트 당시 전체 199순위, '6라운드의 흙수저'로 시작해 7번의 슈퍼볼을 우승한 자의 조언이었다.

대학을 한참 전에 졸업한 기자에게도 당시를 떠올리면 설렘보다 불안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가진 능력과 스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어떻게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지 막막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졸업장을 받아 든 청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AI가 바꿔놓을 세상에 대한 기대와 막연한 두려움을 저마다 품고 있을 터다.
거리에서 자랑스러움과 해방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졸업사진을 찍던 학생들을 떠올린다. 언젠가 그들에게도 각자의 '28대 3'의 상황이 찾아올지 모른다.
올해 미 대학 단상에서 들려온 조언은 단순했다. 더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겸손함, AI보다 실제 지능,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그리고 실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 이 정도면 충분한 출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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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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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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