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10일(현지시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액상형 전자담배 박람회인 '베이핑 엑스포'(2026 UK Vaping Expo) 행사장 내부 모습. 사진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전통적인 담배를 넘어선, 그 이후의 니코틴 시장을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장’. 지난 8~10일(현지시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액상형 전자담배 박람회인 ‘베이핑 엑스포’(2026 UK Vaping Expo)를 한마디로 요약한 표현이다. 실제로 행사장 부스 곳곳에선 이쑤시개·스펀지처럼 담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형태의 제품이 대거 등장했다. 두 개의 액상 카트리지를 동시에 장착하는 제품 등 신규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자담배 기기의 진화도 빠르게 이뤄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액상형 전자담배 박람회 중 하나인 이곳엔 300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하고, 약 2만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제보다 빠른 시장 변화를 보여주는 현장을 직접 다녀온 ‘금연 전문가’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의 도움말을 바탕으로 기사를 정리했다.
" “한국에 무(無)니코틴 액상으로 통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솔루션이 있어요.” "
박람회장 한쪽 부스에 있던 중국 액상형 전자담배 업체 관계자가 웃으면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담배 정의가 연초·니코틴 제품 등으로 확대된 한국의 담배사업법 개정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민 휴대전화 화면엔 특정 화학물질 이름이 나왔다. 이른바 ‘유사 니코틴’이나 새로운 화학물질로 규제를 우회할 방법을 보여준 셈이다.
영국 베이핑 엑스포 행사장에 등장한 이쑤시개 형태의 담배 제품. 사진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실제로 박람회에 나온 전자담배 업체들은 각국의 규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움직였다. 특히 중국 업체들이 한국의 규제 변화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기존 흡연자를 붙잡기 위한 전략과 청소년·젊은 여성 등을 신규 흡연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동시에 가동했다.
전시장 내부는 화려했다. 벽면 가득 진열된 액상 제품들은 망고·에너지드링크 향 등으로 채워졌다. 부스마다 ‘얼음’(Ice), ‘신선한’(Fresh)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했다. 일부 제품은 ‘진짜 담배 맛’(Real tobacco flavor)을 내세워 궐련과 비슷한 타격감을 강조했다.
새로운 전자담배 기기장치도 쏟아졌다. 사용자가 직접 액상을 추가로 주입할 수 있는 제품들의 크기가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 수준으로 매우 작아지는 추세가 뚜렷했다. 이는 각국에서 청소년 흡연과 폐기물 증가 등을 이유로 일회용 제품 규제를 강화한 데 따른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한 한 개로 2만5000회까지 흡입할 수 있는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이 나왔다. 영국 기준으로 5파운드(약 1만원) 안팎인 이들 제품이 갖는 가격 경쟁력이 한층 뚜렷해진 셈이다.
영국 베이핑 엑스포 행사장에 등장한 '듀얼 액상' 형태의 전자담배. 한 기기에 서로 다른 액상 카트리지를 장착해 두가지 맛을 사용할 수 있는 식이다. 사진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맛과 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 변화도 빠르게 이뤄졌다. 하나의 기기에 액상 카트리지 한 개만 넣는 기존 제품과 달리, 두 개의 액상을 동시에 장착하고 흡입구를 좌우 카트리지로 전환하는 ‘듀얼 액상 시스템’ 제품이 대표적이다. 서로 다른 맛과 향을 하나의 기기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순한 담배가 아니라 새로운 전자 디바이스로 진화한 걸 보여준다.
제일 우려스러운 건 기존 담배와 전혀 다른 형태인 ‘비연소’ 니코틴 제품들의 등장이다. 이쑤시개처럼 생긴 제품을 입안에 물고 있으면 표면에 코팅된 니코틴과 가향 성분이 흡수되는 식이다. 스펀지 형태의 제품도 마찬가지다. 겉모습만으론 일반 생활용품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혀 담배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담배엔 냄새·연기·흡연 장소가 같이 간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휴대와 사용이 간편하고 학교 등에서 숨기기 쉽다는 점에서 청소년 노출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 베이핑 엑스포 행사장에 등장한 스펀지 형태의 담배 제품. 사진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이처럼 해외 담배 시장의 변화는 ‘흡연’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사탕처럼 먹거나, 냄새 없이 흡입하고, 숙면·진정 같은 웰니스와 결합한 제품 등이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궐련 중심의 담배 규제 패러다임이 굳건하다.
이성규 센터장은 “영국 박람회는 단순한 전자담배 전시회를 넘어 ‘담배 이후 시대’의 니코틴 시장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시장 바로 앞에 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금연 정책이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론 니코틴 중독과 흡입 행위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유사 니코틴, 무니코틴, 비연소 니코틴 제품 등에 대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