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중구 유니클로 명동점. 1층부터 3층까지 매장 곳곳은 이날부터 시작한 할인 행사 ‘유니클로 감사제’에 북적였다. 총 3255㎡(약 1000평) 규모로 조성된 이곳은 유니클로에서 가장 큰 플래그십스토어(대표매장)로, 지난 2021년 코로나19와 ‘노 재팬(일본제품 불매운동)’ 여파 속 명동에서 철수했다가 지난 22일, 5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3층엔 피팅룸이 24개나 있었지만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옷 한 벌을 입어보려면 15분을 기다릴 정도로 줄이 길었다. 친구와 함께 매장을 찾은 윤모(동대문구·58)씨는 “오랜만에 명동에 왔는데 거리에서 유니클로 판촉물을 나눠주길래 구경하러 왔다”면서도 “유명한 일본 브랜드가 돌아와서 명동 외국인 관광객들을 다 쓸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키네틱 그라운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K패션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노유림 기자
지난 29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키네틱 그라운드'. 이날 K패션 '키르시' 매장을 찾은 대만인 라이나는 ″K팝 아이돌 '세븐틴'을 좋아한다″며 ″롯데백화점을 들렀다 올리브영에 갈 것″이라고 했다. 노유림 기자
하지만 같은 날 명동에 있는 국내 패션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은 외국인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롯데백화점 본점 9층의 K패션 전문관 ‘키네틱 그라운드’를 둘러보는 사람들 대부분도 젊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이날 K패션 브랜드 ‘키르시’ 매장에서 만난 대만인 라이나(22)는 “K팝 아이돌을 좋아해 두 번이나 한국에 놀러 왔다”며 “처음 왔을 때는 편의점과 관광지들을 둘러봤지만, 이번에는 K패션과 K뷰티 쇼핑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 공룡’ 유니클로가 명동으로 돌아왔지만 K패션 브랜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K패션 수요가 커진 덕에 글로벌 대형 브랜드의 존재감에도 고객 이탈 없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9일 서울 중구 무신사 스탠다드 명동점. 노유림 기자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유니클로 명동점이 재개점한 직후 일주일간 키네틱 그라운드의 매출은 전주, 전월 동기 대비 약 15% 늘었다. 무신사 스탠다드 명동점 매출도 같은 기간 전월 동기(4월 24~28일) 대비 약 17% 증가했다.
무신사 관계자는 “해당 기간 명동점 외국인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22%,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해 전체 매출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며 “K콘텐트를 소비하는 외국인 수요가 늘어난 덕에 K패션 등 한국 브랜드 수요도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분기 기준 명동의 유동인구와 점포 수는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업계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명동 상권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국내 주요 패션 브랜드의 경쟁력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신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의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명동·성수·홍대 등 서울 주요 오프라인 점포의 외국인 고객 매출 비중은 약 44%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키네틱 그라운드 매출서 외국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달했다.
K패션 브랜드의 개별 실적도 성장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패션 브랜드 ‘마뗑킴’의 지난해 매출은 1357억원으로 전년(1288억원) 대비 5% 늘었다. 같은 기간 K패션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를 운영하는피스피스스튜디오의 매출도 연결 기준 1179억원으로 전년(1138억원)대비 약 4%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노 재팬 이전만 해도 국내 패션 시장에서 유니클로를 이길 만한 브랜드가 많지 않았지만, 그 사이 K패션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국내외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혔다”며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보다 K패션 매장을 먼저 찾을 정도로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성장 흐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