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병원 입원실의 남녀 구분 의무를 폐지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결국 이를 철회했다.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입원실 운영 기준을 바꾸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 27일 입법예고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35조의2는 ‘입원실은 남·여 별로 구별해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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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실 남녀 구분 폐지…반대 의견 잇따라
관련 조항의 폐지가 예고되자 온라인에서는 “입원실은 옷도 갈아입고 잠도 자는 공간” “여성은 아파도 입원하지 말라는 소리냐” 등 사생활 침해나 성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SNS에서 9만 회 넘게 조회된 한 게시물은 “같은 성별끼리도 병실 안 사생활이 보장되지 못한다”라며 개정안을 비판했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받는 법제처 홈페이지에는 이날 오후까지 4000개 넘는 의견이 접수됐다. 상당수는 “병실에 일면식도 없는 남녀를 몰아넣지 말라”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입법예고의 조회 수는 4만7000건을 넘겼다. 다른 입법예고의 조회 수가 대체로 수천 건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관심이 쏠린 셈이다.
지난 27일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령안. 입원실의 남여 구별 의무를 삭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이틀 만인 지난 29일 자료를 내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무분별한 남녀 입원실 운용은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인환자 입원실 구분을 원칙으로 하고, 부부나 가족 간 2인실 사용, 중환자실, 어린이병원 병실 등은 예외적으로 남녀가 같은 병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복지부 지침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로 ‘현실과 법령의 괴리’를 든다. 현재는 남녀 병실 구분 규정을 위반하면 1차로 시정 명령을 받고, 재차 어기면 영업정지 15일과 같은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복지부는 이 같은 규정 때문에 부부나 직계 가족이 같은 입원실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간병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제약이 발생하는 등 불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광주광역시에서는 “남녀 병실 분리 때문에 간병 부담이 늘어난다”며 정부에 규제 개선을 건의하는 일이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모든 중환자실에서 남녀 환자를 구분하지 않는데도 현행 규칙은 이를 위반으로 보고 있어 불필요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입원실의 남녀 구분을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고 복지부는 덧붙였다.
하지만 복지부의 해명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입원실 남녀 구별을 폐지한다는 개정안의 기본 방향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날 법제처 홈페이지에는 “지침이 있다고 해도 상위 규정에서 폐지되면 강제성이 사라진다”는 반대 의견이 올라왔다.
병원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부부나 가족을 위한 병실을 운영한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진료과별로 병동이 나뉘어 있는 대형병원 특성상 가족이 같은 시기에 입원하는 경우가 드물어 실효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면 중환자실이나 어린이병실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면 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들의 1인실 선호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건복지부는 31일 오후 10시12분 입원실 남녀 구별 규정은 유지하겠다는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사진 보건복지부
반발이 커지자 복지부는 31일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내고 남녀 입원실 구분 의무를 없애려던 방침을 백지화했다. 복지부는 현행 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중환자실과 부부·가족의 2인실 이용 등에 한해 남녀가 같은 병실을 쓸 수 있도록 한 예외도 그대로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