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은 오른 물가 탓에 벌어도 손에 쥐는 돈이 없는 적자 살림 신세고, 고소득층은 증시 호황 등에 소득과 여윳돈이 크게 늘었다. 반도체 호황 등 성장의 과실이 특정 산업과 계층에 집중되는 ‘K자’형 양극화다. 한국은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다.
31일 국가데이터처가 집계한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이하인 1분위 가구의 실질 흑자액은 -43만8000원이다.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세금·이자 등 비소비 지출을 제외)에서 소비지출을 뺀 가계의 실제 여윳돈을 의미하는데, 201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전체 분기를 통틀어 적자 규모가 가장 컸다.
반면에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흑자액은 344만5000원으로 1분기 기준 2022년(390만2000원) 이후 가장 많았다. 1분위와 5분위 간 흑자액 격차는 388만4000원으로, 1분기 기준으로는 2022년 이후 최대치다. 1분위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79만2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1% 감소한 반면, 5분위 가구는 814만6000원으로 3% 증가한 영향이다. 5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차준홍 기자
반도체 호황에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깜짝’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그 온기는 일부 산업과 고소득층에 몰릴 뿐 가계 전반에 번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물가가 오르며 저소득층 살림살이만 더 나빠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대만도 TSMC를 중심으로 GDP가 급성장했지만 반도체 산업과 일부 계층에 과실이 집중되는 이른바 ‘대만병’이 나타났다”며 “한국 역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산업·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한국처럼 K자형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개인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전달보다 0.2% 줄었고, 4월에는 0.5% 더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개인저축률은 2.6%로 쪼그라들었다. 고유가 등으로 늘어난 비용을 저축을 헐어 메우고 있다는 뜻이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인공지능(AI) 주도 증시 호황의 수혜 계층과 소외 계층 사이의 분열이 지구 반대편 전쟁보다 많은 미국인에게 더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올 2~4월 동안 전국의 저소득 가구는 실질 휘발유 지출을 3.2% 줄인 반면, 고소득 가구는 오히려 0.4% 늘렸다고 분석했다. 뉴욕연은은 다른 보고서에서 “소매 지출과 마찬가지로 실질 순자산은 2023년 이후 K자형 패턴을 보여 왔고, 고소득층의 순자산 증가는 금융자산 가치 상승에 기인한다”고 짚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기업의 이익과 임금의 괴리는 더 심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소득(GDI)에서 노동자의 몫은 51%로 1947년 집계 이래 가장 낮았다. WSJ는 “활황인 증시와 불안한 대중 사이의 간극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양극화는 당장 여름 휴가 시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올여름 여행 계획이 있다는 미국인은 45%로, 6년 만에 응답 비율이 가장 낮았다. 로버트 아이솜 아메리칸항공 최고경영자(CEO)는 “고소득 여행객 수요가 중·저소득 고객을 앞지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