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 1948년 7월 12일 의결하여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제헌 헌법 16조의 내용이다. 이 헌법 조항을 근거로 1949년 교육법은 “모든 국민은 6년의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정했다. 이렇게 확보된 법적 근거 위에서 1950년 6월 1일부터 의무교육이 시행되었다.
모든 국민에게 6년간의 무상 초등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GNI)이 50~60달러 내외에 지나지 않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인구의 70~80%가 농업에 종사하는 1차 산업국가였으며 전력 자급률은 8%대에 머물렀다. 일제가 건설한 발전소와 공업 생산 지대가 거의 대부분 북한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세울 시멘트도, 그 학교에 전등을 밝힐 전기도 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의무교육을 향한 대한민국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었지만,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어 가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만큼은 온 국민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무교육이 시행된 바로 그달 25일 북한이 기습 남침을 해왔고, 수도 서울이 함락되며 대전을 거쳐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삼는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꺼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의무교육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전쟁의 참화 속에 변변한 산업조차 없었던, 해외 원조 없이는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자립이 불가능한 나라였지만, 1960년에 이미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취학률 90.1%를 달성할 수 있었고, 1960년대 중반에는 완전 취학 수준에 도달했다. 바로 그 교육의 힘이 대한민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재는 어떨까. 체험학습과 운동회, 사교육과 입시 등 온갖 논란에 휩싸인 채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초심을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