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자치 선거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난다. 사전 투표일(5월 29~30일)은 지났고, 본 투표일(3일)은 이틀 남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혹시나’는 인공지능(AI)만큼은 아니더라도 선거 운동의 혁신에 대한 기대였다. ‘역시나’는 네거티브 등 고질병 관행이 되풀이되어서다. 창의가 없는 답습에 무섭도록 무감각한 정치권과 우리 공동체도 여전하다.
서울시장 토론, 잠 잘 시간에 열려
토론은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
선거법 고쳐 여러 번 하게 해야
우선 나부터 진부하다. 앞으로 4년 동안 나와 우리 가족, 지역민과 지역 생활을 행정 단위별로 이중 삼중으로 책임지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이 누가 있는지 거의 모른다. 그들의 정책과 지향하는 지역공동체의 모습을 분별하지도 못한 채 투표장으로 간다. 고정관념에 의존해 투표하고는 민주 시민으로서 책임은 면피했다고 자위할 것이다.
‘후보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질문할 수밖에 없는 깜깜이 선거의 가장 큰 이유는 후보자끼리 벌이는 토론회가 제대로 개최되지 않아서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의 경우 여당 후보자의 토론 회피로 법적 의무인 1회만 실시되었다. 그마저도 서울은 사전 투표일 바로 전날인 5월 28일 밤 11시에 시작해 투표 시작 5시간 전인 5월 29일 새벽 1시에 끝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딱 한 번의 토론’이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열린 것이다.
1조3077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들여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선거에서 후보자 선택에 중요한 수단인 ‘후보자(들) 간 직접 토론’을 이렇게 시민과 격리된 시간에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모독하는 것이다.
토론은 소크라테스 이래 사실(진실)을 파악하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인정받아왔다. 자유로운 주장, 질문, 응답, 반박, 옹호로 구성되는 토론은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대의민주주의는 합리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갖춘 ‘유식한 시민(informed citizen)’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식한 유권자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 OTT 중심의 소비 증가, AI 기술의 도입으로 상업화와 개인화 중심의 편향적인 정치 콘텐트를 쏟아내면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를 기대한 소셜 미디어가 특정 후보를 일방적으로 칭송, 긍정하거나 비난, 부정하는 내용으로 후보 선택을 압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흉기가 되고 있다.
후보자 간 직접 토론은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가공 없는 ‘날 것’의 상태로 보여준다. 유권자는 운동원이나 선전 메시지의 보호 장치가 풀린 상황에서 후보자들의 논쟁·설득·소통 능력을 비교할 수 있다. 비로소 간접적으로 형성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후보자의 상대적 우열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보자 간 토론을 기자회견, 정책발표회, 인터뷰, 한 후보만 초청한 패널 참가 토론회와는 다른 진정한 토론이며, 후보자에 대한 압축된 지식을 제공하고 민주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라고 평가하는 것이다(『Televised presidential debates and public policy』, Kraus).
토론을 통한 검증이 없는 공산국가의 선거와는 다르게 민주국가의 선거는 사상의 자유 공개시장에서 상호비교의 토론을 통해 우월성을 가늠하는 것이다. 후보자 간 토론은 선거를 어지럽히는 포퓰리즘, 팬덤주의, 묻지마 지지의 부화뇌동을 막고, 특히 무당층과 중도층 유권자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주주의의 정치후보자는 자신의 정책과 이유를 제시하고 이를 대중 앞에서 다른 후보자와 토론을 통해 유권자를 설득해야 한다. 토론은 민주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좋은 방법일 뿐만이 아니라 후보자에게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기도 하다.
후보자 간 직접 토론을 한 차례로 규정한 선거법을 여러 차례 할 수 있도록 개정하여 진정한 숙의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