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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런던에는 있고, 도쿄에는 없는 것

중앙일보

2026.05.31 08:14 2026.05.3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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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도쿄총국장

유성운 도쿄총국장

4년 전, 영국 런던으로 연수를 갔다. 입국 이튿날 해가 뜨자마자 런던의 분위기를 만끽하러 나갔다. 런던을 대표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 국회의사당을 거쳐 빅벤을 막 지났을 때였다. 눈에 커다랗게 걸리는 구조물이 있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 기념물(Battle of Britain Monument)’이었다. 출격 명령을 받고 전투기로 달려가는 조종사들과 지상 근무 요원들이 청동 부조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은 유럽 최강 독일 공군에 의해 쑥대밭이 됐다. 윈스턴 처칠은 지하 방공호에서 내각을 꾸려야 했을 정도다. 그래도 영국은 항복 대신 항전을 택했고, 체코·폴란드 등 나라를 잃은 파일럿들이 자원입대해 힘을 보탰다. 결국 히틀러는 영국 정복을 단념했고, 이는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런던 템스강변에 있는 ‘영국 본토 항공전 기념물’. 참가한 15개국 파일럿과 승무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유성운 기자

런던 템스강변에 있는 ‘영국 본토 항공전 기념물’. 참가한 15개국 파일럿과 승무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유성운 기자

기념물 명판에는 당시 항공전에 참여한 15개국 2937명의 이름이 출신국별로 새겨져 있다. 그중 544명은 전투에서, 795명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숨졌다는 설명도 있다. 처칠이 훗날 “역사상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토록 소수에게 이처럼 큰 빚을 진 적이 없다”고 한 이들이다. 이뿐이 아니다. 버킹엄궁전에서 런던의 번화가 피커딜리 서커스로 가는 길목엔 영국 공군 폭격기 부대 전사자 5만5573명을 기리는 시설이 있다. 런던 곳곳이 그렇다. 지방도 마찬가지. 어디든 중심부에는 제1·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 기념비가 서 있었다.

얼마 전 도쿄로 왔다. 영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다. 속내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전통을 존중하며, 줄서기도 즐긴다. 하지만 런던에서 흔히 보던 참전군인 추모 시설을 도쿄에선 찾기 어렵다. 일본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글쎄, 야스쿠니(靖國)신사 정도인가”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일본은 20세기 전후 세계사의 주역이었다. 청일·러일전쟁에서 강대국을 꺾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후 잘못된 선택이 나라를 멍들게 했다. 주변국에도 피해를 줬다. 그래서 일본인은 전쟁을 숨기고 싶어한다. 전몰자를 합사한 야스쿠니는 늘 논란거리다. 영국과 일본의 차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놓고 논란이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이 있는데, 왜 또 짓느냐고도 한다. 철거하겠다고 한 정치인도 있다. 건축학이나 미학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런던과 비교하면 서울은 참전군인 추모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들을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추모할 수 있는 것은 큰 자산이라는 것이다. 런던과 도쿄를 가보고서야 알게 됐다.





유성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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