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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한반도 큐] 세계를 보라면서 한국에만 눈감은 북

중앙일보

2026.05.3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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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오간 북한 대표단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1. 2009년 8월 21일 오후 김포공항. 김기남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를 비롯해 5명의 북측 대표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이 적힌 조화(弔花)를 가지고 고려항공 여객기에서 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방한한 이들은 국회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갔다.

고위급 북 인사 방한 때 렌터카
여자 축구단은 관광 버스 이용
냉각된 남북관계 차량에도 반영
북, 스포츠 현장에서도 선 긋기

2009년 8월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방한한 북한 대표단에게 통일부가 제공한 렌터카. [중앙포토]

2009년 8월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방한한 북한 대표단에게 통일부가 제공한 렌터카. [중앙포토]

#2. 지난달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토너먼트 경기를 위해 북측 내고향 여자 축구선수단 35명이 도착했다. 선수단은 공항에서 곧장 경기가 열리는 수원으로 이동했고, 준결승과 결승에서 승리한 뒤 지난 24일 출국했다.

통상 북측 대표단이 방한할 경우 정부 기관 소유의 차량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회담은 물론, 평양 겨울 올림픽 선수단 및 응원단 등 스포츠 경기 참가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데 용이하고, 남북이 서로 상대측을 방문할 경우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행사를 위해 훈련받은 운전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문단과 내고향 여자 축구단은 예외였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올스톱됐던 2009년 방한한 조문단은 신변 보호가 필요한 고위급 인사들이었지만, 각각 ‘26허’, ‘46허’로 시작하는 에쿠스와 ‘03허’로 시작하는 다이너스티 승용차 등 3대의 렌터카를 이용했다. 당시 정부가 보유한 차량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통일부가 기사를 포함한 렌터카를 임차해 제공한 것이다. 축구단도 방한 기간 ○○○관광 소속의 민간 관광버스를 이용했다. 주최 측이 일본, 호주, 북한 등 대회 참가 선수단에 일괄적으로 교통편을 제공했다지만, 북한 대표단의 관광버스 이용은 남북 교류가 완전히 중단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냉각기엔 정부 소유의 차량 지원도 끊긴 셈이다.

말도 안 섞은 북한 여자 축구단
남북관계가 냉랭한 상황에서 이뤄진 두 사례에서 북한 대표단의 방한 태도는 상반됐다. 2009년 조문단은 1박 2일 예정으로 방한했다. 그러나 일정을 하루 늦추면서까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면담하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타진했다. 그러나 이번 북한 여자 축구단은 방한 기간 내내 한국 인사들과 말조차 섞지 않았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에게 우리 관계자들이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네도 일체의 대꾸가 없었다고 한다. 대회 관계자는 “(말을 섞지 말라는)상부 지시가 있었는지 북한 선수단은 한국에 머무는 내내 아예 한국 관계자들과 접촉을 경계했다”며 “우승 후 경기장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북한 노래를 부르며 자기들끼리 흥겨워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버스 안에서도 침묵을 유지했다”고 귀띔했다.

과거 북한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리거나,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때 스포츠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전환으로 수세에 몰렸던 1991년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1991년 각각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 출전에 합의하고 선수단을 보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열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도 대표단이나 응원단을 파견했다.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하며 한반도의 봄을 기대케 했던 2018년엔 평창 겨울 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같은 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도 원팀을 이뤘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으면 북한의 스포츠 정신은 사라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아예 보이콧했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이듬해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는 각각 응원단 파견 무산과 대회 2주 전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지속적인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어느 때보다 냉각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 이번 북한 여자 축구단의 방한 결정은 다소 의외였다. 일각에선 과거 미국과 중국이 탁구 교류로 외교 물꼬를 텄던 것처럼, 북한 선수단의 방한이 남북관계 복원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단은 침묵으로 거리를 두다 결승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취재진이 ‘북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국호를 제대로 사용해 달라고 반발하며 회견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북측’ 표현은 북한이 요구하던 것
북한은 두 국가론을 내놓기 전까지 자신들을 ‘북측’이나 ‘북조선’으로 부를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 북한 입국 심사서에 우리 국민들이 국적을 ‘대한민국’ 또는 ‘한국’, ‘남한’ 등으로 기재하면 화를 내며 ‘남측’이나 ‘남조선’ 등으로 수정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금강산이나 개성 관광객들 역시 국적을 남측으로 쓰기로 합의했고, 그대로 이행했다. 그랬던 북한이 이젠 국제대회 기자회견장에서 자신들을 오직 ‘조선’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만 부르라고 압박한다. 정작 국제 사회가 자신들을 ‘North Korea(북한)’라 불러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축구단의 이번 방한은 한국을 완전히 다른 나라, 즉 ‘남남’으로 규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북 교류와는 상관없는 국제 스포츠 대회일 뿐이니 아무런 감정 없이 비즈니스를 하거나, ‘적대적 두 국가’ 의지를 명확히 하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체제 존망이 걸렸던 경제 위기를 넘기고 핵을 앞세운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만을 향한 의식적인 북한 대표단의 침묵과 국호 시비는 한국에 대해 여전히 극도의 감정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경제난에서 다소 벗어난 2010년을 전후해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를 내놓으며 세계화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를 외치면서 남북 교류를 외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통일은 애국이고, 분단은 매국”이라던 북한은 지난 3월 남쪽 국경선을 휴전선으로 하는 영토조항을 신설하며 선 긋기를 한층 강화했다. 한국과 영원한 결별, 즉 남남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에 영원이란 건 없다. 자신들이 불리할 땐 손을 내밀고, 다소 여유가 생기면 입장을 확 바꿨던 것이 북한이었다.





정용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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