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KTX와 SRT. 비공무원 조직인 코레일에 특별사법경찰관을 도입하자는 법안이 지난 3월 발의됐다. 사진 중앙DB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삭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국회가 행정직 공무원들인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을 확대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어 법조계 불안감이 크다.
31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특사경을 신설하거나 수사 범위를 확장하는 ‘사법경찰관리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13개 발의됐다. 격주에 하나 꼴이다. 대표적으로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15일 지식재산처(옛 특허청) 특사경의 권한을 확대해 경찰 대신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기술 유출 범죄도 수사하게 하자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하루 뒤 식품의약품안전처 특사경에 마스크, 손소독제 등 의료용품 매점매석과 담배 유해성 관련 범죄 수사권도 부여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밖에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 비방 목적 허위 정보 등 수사권을 부여하는 서영석 민주당 의원 개정안,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지법 위반 혐의 수사권을 추가로 주자는 윤준병 민주당 의원 개정안도 발의됐다. 조인철 민주당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특사경을 신설해 경찰 대신 개인정보 침해 사고를 수사하게 하자는 개정안을 냈다.
━
영장 없이 계좌내역 조회 권한도
단순히 수사 범위를 늘릴 뿐 아니라 비공무원에게 수사권을 주거나 법원 영장 없이 계좌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코레일, 서울교통공사 등 지하철 운영 법인에 특사경을 도입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들은 비공무원 조직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마찬가지로 비공무원 조직이지만, 특사경 권한을 주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과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아직 출범하지 않은 부동산감독원에 특사경을 도입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민주당은 부동산감독원에 법원 영장 없이 부동산 불법행위 조사 대상자의 금융거래, 대출 현황 등을 열람할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특사경은 신분상 행정직 공무원이나, 특정 범죄에 한해 법으로 수사권을 부여받아 경찰처럼 피의자 입건, 소환, 조사, 구속·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 ‘수사 지휘’로서 검찰 통제 범위 내에 두는 것이 제도의 밑바탕이었다. 정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논의하면서 공소청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을 유지할지 고민하고 있다.
━
“권한남용, 암장 사건 늘어날 것”
공소청법에 이어 형사소송법에서도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삭제되면 앞으론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외부 통제 없이 특사경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법조계에선 특사경의 무분별한 규모 확대 속 일선 수사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사경 수사지휘 경험이 있는 현직 부장검사는 “현재로선 각 특사경이 임금 체불 등 사건을 내사했다가 무혐의 종결하려면 검사 지휘를 받아야 하는데, 지휘권을 삭제하면 암장되는 사건이 우후죽순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스1
이근우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도 “코레일, 건보 등 직원은 단순 민간인인데 수사권 권한을 부여하자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며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는 특사경이 늘면서 수집한 증거가 향후 재판 단계에서 위법수집증거로 증거 능력을 잃어 면죄부를 주는 상황이 우후죽순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2014년 세관 공무원이 취득한 우편물을 재판 증거로 제출했던 사건에서 행정조사상 적법하게 취득한 자료라 해도, 재판 증거로 활용하려면 영장 발부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의 자문위원장을 맡았던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 일각에서 특사경 수사권한이 존치되면 검찰이 직접 수사권처럼 남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나 그랬던 사례도 없고 구조상 불가능”하다며 “특사경 제도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적절치 않고, 검찰 폐지 후 당분간은 현상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