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엔비디아·AMD 같은 회사가 만든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가 중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로 우회 수출되는 길을 차단하는 조치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새로운 지침을 통해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에 대한 첨단 AI 칩 수출 통제를 해외 자회사로 확대 적용한다고 밝혔다. 현재 엔비디아 블랙웰을 비롯한 첨단 AI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상황에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제3국에 위치한 중국 기업 자회사가 AI 칩을 확보하는 것도 틀어막는 취지다.
로이터는 “바이든 정부 시절 만든 AI 규정을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5월 시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1년간 생긴 ‘구멍’을 막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그동안 허점을 노려 팔려나간 AI칩 규모가 수십만 개에 달할 수 있다고도 보도했다.
조치의 단초가 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 뉴욕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올해 3월 실리콘밸리 수퍼마이크로컴퓨터(수퍼마이크로) 공동 창업자 이시얀 랴오(월리 랴오·71) 등 회사 관계자 3명을 수출통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에서 만들고, 미국 AI 기술을 탑재한 고성능 컴퓨터 서버를 말레이시아 회사를 거쳐 중국으로 몰래 넘긴 혐의다.
검찰은 이들이 서류를 조작하고 감사를 통과하기 위해 가짜 서버를 창고에 가져다 놓고 중간회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헤어드라이어기로 반도체 일련번호를 지우는 수법도 동원했다. 이런 방식으로 최소 5억1000만 달러(약 7600억원)어치 서버를 중국으로 빼돌렸다고 보고 있다. 수퍼마이크로는 엔비디아 매출의 약 9%를 차지한다. 엔비디아의 ‘자매 회사’로 불릴 정도라 파장이 컸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시절인 2022년부터 엔비디아 AI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해 왔다. 올해 초에는 중국 AI 기업 딥시크가 엔비디아 AI 칩을 활용해 AI 모델을 학습시켰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4월에는 중국 2위 파운드리 업체 화훙에 대해 반도체 장비 공급을 제한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번 상무부 조치로 우회 수출까지 막는 등 그물망을 넓히는 모양새다.
AI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공급사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간접 영향권이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를 경유한 중국계 기업의 반도체 조달에 대한 미국의 감시가 강화할수록 한국 기업도 최종 거래 상대방을 확인하고, 수출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