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호프만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1일 서울신라호텔에서 ‘2026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열렸다. 김종호 기자
“저는 조금 다른 ‘한국인’입니다. 제 뿌리를 인정해 준 호암상 수상이 너무나 뜻깊고 가슴 벅찹니다.”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에바 호프만(51)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1일 호암재단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36회 삼성 호암상 시상식을 열었다. 삼성 호암상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이병철 창업회장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제정했다. 학술·예술 및 사회 발전과 인류의 복지 증진에 기여한 한국계 인사를 선정해 시상한다.
이날 행사에는 수상자와 가족·지인, 삼성 사장단 등 270여명이 참석했다. 삼성 경영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전영현 부회장, 노태문 사장 등이 자리했다. 이 회장은 5년 연속 참석이다.
앞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호프만 교수 부부, 예술상 조수미 성악가, 공학상 김범만 포스텍 명예교수 부부, 유홍림 서울대 총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 뒷줄 왼쪽부터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오성진 UC버클리 교수 부부, 사회봉사상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부부, 과학상 윤태식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교수 부부. 삼성호암상은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선정하는 학술상이다. [사진 호암재단]
올해 수상자는 의학상을 받은 호프만 교수를 비롯해 ▶오성진 미국 UC버클리 교수(과학상 물리·수학) ▶윤태식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교수(과학상 화학·생명과학) ▶김범만 포스텍 명예교수(공학상) ▶조수미 소프라노(예술상)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사회봉사상) 등 6명이다.
특히 이번 시상식에선 탁월한 학문적 성과 뒤에 자리한 호프만 교수의 개인사가 알려지며 묵직한 울림을 던졌다. 지난달 31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어렸을 때부터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나.
A : “덴마크 양부모님의 훌륭한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청소년기엔 수영이 좋아 올림픽 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고교 시절 생물학 수업에서 유전학을 처음 접하고 깊은 경외감을 느꼈다.”
Q : ‘U자 곡선’ 연구가 학계에 충격을 줬다.
A : “‘나이가 들수록 난자 상태가 무조건 나빠진다’는 정설을 깼다. 3000여개의 난자를 분석한 결과, 15세 이하에서도 난자의 절반가량이 염색체 이상을 보였다. 오히려 16~26세 구간에서 이상 비율이 낮아지는 U자 곡선 형태를 띄었다.”
Q : 난임 부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A : “주된 고민은 ‘이 곡선을 완만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다. 향후 가임기 여성의 유산 확률을 낮추고, 30·40대 여성의 선천성 질환 발생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
기초연구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호프만 교수는 “연구 펀딩이 양자 기술 등 특정 분야에 편중돼, 연구자가 스스로 주제를 선택할 학문의 자유가 위협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Q : 입양됐다고 들었다. 어떻게 한국 가족과 만났나.
A : “생후 2.5개월 때 가족 생계가 어려워졌고, 입양을 보내도 계속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입양기관 말에 속았다고 했다. 하지만 기관이 서류를 ‘고아’로 위조해 덴마크로 보내졌다. 가족들은 이중 서류 탓에 제가 네덜란드에 간 줄 알고 30년간 찾고 있었다. 그러다 2006년 한국 입양기관의 직원이 된 친오빠 지인의 추적으로 묻혔던 진실이 풀렸다.”
Q : 한국 가족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
A : “32살이던 2007년 미국 알래스카로 이민 간 가족과 만났다. 정말 따뜻했다. 한복을 선물해 주시고 어머니가 직접 김치 레시피도 알려줬다. 안타깝게도 재회 한 달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가족을 찾지 못하는 입양인도 많은데, 한 번이라도 뵐 수 있어 다행이었다.”
호프만 교수는 수상의 영광을 17만 명의 다른 한국계 입양인에게 돌렸다. 그는 “이번 수상이 한국 사회에서 ‘입양인’이라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는 뜻이길 바란다”며 “아이를 버렸다는 비난과 수치심을 안고 살아왔을 한국의 가족들에게도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