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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남극 폭력 사건이 말하는 우주시대 준비법

중앙일보

2026.06.01 08:13 2026.06.0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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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달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사진)에서 들려온 소식은 흡사 밀실 공포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평소 동료들과 갈등을 겪던 A대원이 기지 내에서 47㎝ 길이의 칼을 직접 만들어 휘두르려다 붙잡힌 것이다. 다행히 책임자들의 설득으로 파국은 막았지만, 진짜 장르물이 시작된 건 그 이후였다.

장보고과학기지는 남위 74도, 동경 164도, 남극대륙 동남쪽 테라노바만 연안에 있다. 사건이 일어난 건 4월 13일 오후 7시 20분. 24시간 밤만 이어지는 극야(5월 초~8월 중순)가 시작되는 날로부터 20여일 전. 수평선 가까이 뜨다 지는 해라도 6시간 반밖에 나오지 않는 때였다. 기지 밖은 블리자드가 휘몰아치는 영하 27도 극한의 겨울밤. A대원은 칼부림 소동 후 연구동과 불과 50m 떨어진 비상대피동에 격리됐다가 한국서 출발한 호송대원이 도착한 5월 7일에야 기지를 떠났다.

지구의 끝에서 벌어진 이 기묘한 상황은 단지 극지방의 해프닝이 아니다. 머잖은 미래에 다가올 우주시대의 고민거리를 미리 보여주는 ‘타임머신’이다.

흔히 우주 개척을 이야기할 때 로켓의 추력이나 재사용발사체 같은 하드웨어만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통제하기 힘든 변수는 인간이다. 최고 수준의 심리 검사를 통과한 전문가들이라 할지라도, 창문 너머 끝없는 어둠만 가득한 폐쇄공간에 갇히면 이성의 끈은 얇아지기 마련이다. 영화 ‘남극의 셰프’(2009)가 고립 공간의 처절한 스트레스를 사실적으로 보여줬듯, 극한 환경 속 인간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하물며 지구와 실시간 통신마저 수십 분씩 지연되는 화성행 우주선 안이나 달과 화성의 기지라면 그 심리적 파괴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공간에서의 ‘공권력 부재’다. 화성 기지에서 칼부림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편도비행만 최소 6개월인 그곳에서 지구의 경찰이나 법을 기다릴 수는 없다. 장보고기지처럼 가해자를 격리할 별도의 ‘감옥’을 지을 여유 공간도, 감시할 유휴 인력도 없다. 게다가 특정 국가의 영유권이 인정되지 않는 우주에서 누구의 법으로 처벌할 것인가.

남극기지는 물론이고 우주탐사도 하드웨어만으론 안 된다. 사람이 가는 곳엔 개인의 마음을 위한 소프트웨어, 사람들을 위한 거버넌스 시스템도 필요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제로 2045년 화성 이주 시대에서의 정치체제를 연구하고 있다’던 하와이 미래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최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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