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를 먹었다. 일 년에 두 번, 여름맞이 겨울맞이 제철 음식을 해 먹는 모임에서였다. 올해는 제철 바지락과 백합으로 전과 국을 끓이고 육전에다 파김치를 싸 먹었다. 자두 맛을 보며 올해 첫 자두로구나 반기고 보니, 여름이 오기는 왔다지만 복사꽃 살구꽃 핀 때가 언제인데 벌써 수확 철인가, 좀 어리둥절했다.
광장시장 새댁네 못 잊을 순대 맛
뜻밖에 폐업 소식에 마음 저려
지금 제철 음식이 생의 마지막 맛
과일의 제철이 한 계절 앞으로 당겨진 지 오래. 딸기는 겨울이 제철. 설향, 금실, 장희, 죽향, 육보, 킹스베리, 비타베리, 품종도 다양하게 하우스 맛을 보고 나면, 봄 노지딸기는 뻔한 맛 시들한 맛이 되고 만다. 그 뒤를 참외가 이어받고 더 크고 당도 높은 개량된 블루베리가 줄을 잇는다. 수박은 한겨울에도 있었으니 이러다 아오리 사과가 곧 나오려나.
자두는 정말 자두! 맛 아니냐? 자두자두한 맛? 누군가 자두 씨를 쪽쪽 빨며 말했다. 자두다! 하는 맛이 자두 맛이지. 옆에 있던 사람이 말장난을 치자, 또 누군가 자두 사탕 맛! 이라고 외쳤다. 그 순간 자두 껍질의 신맛은 싹 사라지고, 노란 과육의 단맛만 입안 가득 몰아쳤다. 딱 자두구나 싶은 자두 사탕 맛을 떠올리게 하는 자두의 참맛이라니.
우리는 당겨온 여름 자두를 입안 가득 즐기며, 옛날에 즐겨 먹던 과일 맛 얘기를 했다. 학교 교문 앞에서 팔던 풋 복숭아 같은 것. 왜 그렇게 풋사과 풋자두 풋복숭아 같은 것들을 가지고 와 어린애들을 유혹했나. 상품 가치를 위해 솎아낸 것이 분명한 여물지도 않은 과일을. 복숭아 자두 하나씩 입에 물고, 신발 주머니 휘휘 돌려가며 집으로 가는 길. 과육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복숭아뼈를 빨고 또 빨던 기억.
다시 맛보고 싶은 기억의 맛. 그런 백도 한번 다시 먹어보고 싶네. 손끝만 대도 훌렁훌렁 껍질이 벗겨지는,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턱까지 주르륵. 요즘엔 왜 그 맛이 안 나나 몰라. 살구며 자두며 복숭아며, 더 예뻐지고 더 반짝거리고 더 달아진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그 맛이 안 나네. 맛이 변한 걸까, 입맛이 변한 걸까? 기억이 변한 걸까? 나는 다시 못 볼 맛에 대해 생각했다.
광장시장에 가면 오후 네 시에 좌판을 여는 순대 아줌마가 있었다. 우리는 그이를 새댁이라 불렀다. 오래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할머니에게 인수 받아 새 주인이 된 새댁. 말도 없이 묵묵히 순대를 써는 수줍은 새댁. 새벽에 신선한 선지를 받아다가 신랑과 함께 순대를 만들고, 신랑이 출근하고 나면 그걸 삶고 식혀 나와 팔고, 딱 한 대야 순대가 떨어질 무렵 퇴근하는 신랑이 와 좌판을 거두어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는 새댁네 순대.
내게는 순대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순대다! 할만한 최고의 순대였다. 그리하여 광장시장은 새댁네 순대가 있는 곳. 광장시장을 가는 이유는 오로지 순대. 고등학생 때부터 다녔으니 거의 사십 년. 그만하면 서로 알은척을 하련만, 그저 오소리감투 같은 걸 좀 더 챙겨주는 거로 인사를 대신하는, 여전히 수줍은 새댁은 이제 허리가 휜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랜만에 가보니 전에 없이 기나긴 줄이 생겨나 있었다. 유튜브에 나왔다던가 TV 방송에 나왔다던가. 좌판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줄 때문에 이웃 상인들과의 신경전도 심한 듯 보였다. 한 시간가량 기다려 순대와 내장을 포장해 왔다. 뜨끈한 봉지를 두 손에 감싸 쥐고서, 장사가 잘되니 좋구나 하면서도, 나의 사십 년 추억을 도둑맞은 양 상실감이 들었다. 이제 먹기 힘든 순대가 되어버렸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그 맛을 못 잊어 다시 찾은 광장시장. 새댁네 순대 좌판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앞 동태찌개 집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병들어서 그만둔 지 꽤 되었다고 말해준다. 사람들이 그렇게 못살게 구는데 병이 안 나고 배겨? 마음이 저렸다. 새댁의 순대 맛을 세상에 알려버린 누군가에 대해. 비껴갈 수 없는 세월에 대해. 너무 일찍 와버린 계절에 대해. 다시 못 볼 맛에 대해. 숨겨둔 애인을 영영 잃은 기분이었다.
제철 맞은 백합이 아주 달고 진하구나, 남은 국물을 마시면서 다음 모임 계획을 세웠다. 새조개를 먹으려면 언제 모여야 하나, 꽃게 철에 만날까 낙지 철에 다시 모일까. 아직 오지 않은 계절과 지나간 계절을 함께 두고서, 다음 계절을 기약했다. 생에 마지막 계절,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