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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의 AI와 함께하는 인문여행] 소버린 AI는 기술의 문제이자 정신의 문제다

중앙일보

2026.06.02 08:12 2026.06.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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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소버린 AI’, 즉 AI 주권이 비상한 관심거리이다. 문헌학자들에 의하면 ‘소버린(Sovereign)’은 어원적으로 “최고 권위의 원칙”을 뜻하며, 이는 로마시대 때부터 ‘민족 간의 지배/종속’의 문제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 ‘지배/종속’이라는 사안이 오늘날의 AI 주권 다툼에서도 초점이다.

왜 그런가? AI 주권의 문제가 국가 간의 경쟁이라는 층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고, 그 경향이 “주권은 나눌 수 없다”라는 생각에 근거해 승자독식이라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는 표준의 문제이다. AI 시스템의 향후 진화에서 누가 표준을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수반하는 모든 AI 관련 공정들과 생산품들이 그에 종속되며, 다른 표준들은 도태되기 때문이다. 사자가 다른 씨앗의 새끼 사자들을 물어 죽이는 꼴과 똑같다.

유럽 반발 부른 구글 프로젝트
비영어 문헌의 디지털화 촉진
우리는 여전히 영인본에 신경
사유 자립에서 기술 자립 싹 터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주권의 문제는 근대국가에 들어서 더 요란한 다툼 거리가 되었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눈에 띄었고, 그게 탐이 나다 보니 자유의 원리가 평등의 원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편리하게, 얼마나 좋은 품질로, 얼마나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더해, 얼마나 큰 심리적 호응을 얻느냐, 라는 항목들의 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쪽이 표준을 독점하게 된다.

AI가 용트림을 하게 된 현재의 시점에서 AI 주권은 모든 국가의 긴급한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같은 후발국에는 특히 거대 빅테크들의 본거지 숙주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기생 생물의 처지에서 그 절박성이 방울뱀의 꼬리처럼 진동한다. 한국이 AI의 표준을 거머쥘 수 있을까? 군침 나는 질문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표준 독점 아닌 자주가 목표여야
우리 입장에서는 AI 표준의 독점이 아니라, 자주(自主)가 당장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표준 수립의 추세와 호응하되 독자적인 부문이나 규격에서 특별한 성과를 내는 것이다. 가령 한국의 디지털 산업이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가 강하고 설계보다 제조가 능하다는 것은 최근에 그 효과를 여실히 느끼게 된 한국적 특성이다. 이 특성은 한국을 요긴하면서도 야무진 강소국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향은 한국의 AI 시스템을 수동적 반응의 구조로 끌고 간다. 한걸음 늦게 가는 꼴이 고착화될 지도 모른다. MASGA의 아이디어를 먼저 냈지만, 그게 언제 추진될지 우리는 지금 아무런 전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시스템 자체의 독자성이라는 자립의 방향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지배적 표준과 상응하면서도 차별화되어서 표준의 약점을 보완하고, 그 기운을 몰아 미래의 표준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하기까지 하는 잠재적 표준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따라가되 변형하는 길이다.

자립은 기술의 자립뿐만 아니라 사유의 자립까지 이룰 때,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그 점에서 AI 주권의 문제가 불거지기 20여년 전에 발화한 ‘문화주권’ 소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글은 2004년 ‘구글 프린트 프로젝트’를 발동하고 영어로 된 모든 문헌의 디지털화를 착수하였다. 그리고 그걸 전 세계인에게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의도를 발표하였다. 이 시도는 두 가지 방향에서 완강한 저항에 부닥쳤다. 한 방향에서는 출판사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대규모 저작권 침해, 디지털 해적 행위에 대한 공포가 결국 그 시도를 계류시켰다.

그러나 이보다 흥미로운 점은 영어권 도서의 세계적 확산이 가져올 사유 형식의 독점에 대한 우려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장 노엘 잔느네(Jean-Noel Jeanneney)는 2005년 1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구글이 유럽에 던진 도전’이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은 영어 문헌과 영미권의 시각을 최상단에 노출하여, 역사 해석과 문화의 영미권 종속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영어 중심의 디지털화는 비영어권 언어와 문화의 영향력을 급격히 축소시키는 문화적 획일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런데 이 우려는 텍스트의 디지털화를 막은 게 아니라, 오히려 촉진하였다. 비영어 문헌들을 디지털화해야 한다는 각성에 풀무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프랑스어 문헌을 디지털화하는 ‘갈리카(Gallica) 프로젝트’를 비롯, 유럽 전역을 연대하는 수다한 프로젝트들이 솟아 나왔다.

문화주권에 무지한 한국
어느 나라보다도 정보화에 앞섰던 한국은 아쉽게도 문화주권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이 한문 고전들을, 국립중앙도서관이 근대문헌들을 디지털화하는 데 애를 쓰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우리는 대부분의 중요한 과거 문헌들을 사진 영인본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차이는 엄청나다. 디지털화된 문헌은 검색·비교·종합·요약 모든 게 자동처리될 수 있다. 아날로그로 남은 문헌은 각 개인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만 겨우 해독되고 이 또한 유통이 쉽지 않으며, 게다가 점점 글자가 바래고 있다.

필자는 이런 부실함이 AI 주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작용할까 봐 불안하다. AI 주권을 오로지 기술의 선점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앞에서 말했듯 한국의 AI 주권은 독점의 방향이 아니라 자주의 방향에서 생존의 길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 AI들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과 연계되어 있다. 즉 “나눌 수 없는 주권”을 나눌 수 있게끔 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 자체가 하나의 정신이다. 독점으로부터 공진화로 방향을 돌리는 정신이 요동치는 AI 경쟁 토네이도(회오리바람)에 성찰적 계기들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근대국가에서 주권 담론이 최종적으로 국민주권에 대한 논의로 발전한 것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다시 되뇌어 본다. 주권의 핵심은 국가 주권이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귀속되는 국민주권이다.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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