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의 백전노장인 쿠베크 감독은 흔들리는 체코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AP=연합뉴스
“들러리 서려고 멕시코까지 날아가는 거 아닙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북중미 월드컵 첫 상대 체코의 미로슬라프 쿠베크(체코) 감독은 ‘예상 성적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체코(FIFA랭킹 41위)는 오는 11일 개막하는 월드컵에서 한국(25위), 멕시코(15위), 남아프리카공화국(60위)과 함께 조별리그 A조에 편성됐다. 체코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한국시간으로 12일 1차전을 치른다. 한국과 체코는 멕시코에 이어 조 2위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1951년생으로 만 75세 ‘백전노장’인 쿠베크 감독은 체코 축구의 ‘소방수’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한국 감독과 경합 끝에 지난 12월 체코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체코는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약체 페로제도에 0-1로 패하며 크게 흔들렸다.
강호 덴마크를 물리치는 이변을 쓰고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체코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주장 크레이치(아래)는 득점에 능한 특급 수비수다. 로이터=연합뉴스
쿠베크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단숨에 선수단을 장악하고 월드컵 본선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체코는 지난 4월 유럽 PO 결승에서 한 수 위로 평가받는 덴마크를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3-1(연장 전·후반 2-2)로 꺾는 이변을 썼다. 준결승에선 아일랜드를 승부차기에서 4-3(연장 전·후반 2-2)으로 물리쳤다. 체코가 월드컵에 복귀하는 건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20년 만이다.
체코 국민들은 팀을 위기에서 구한 쿠베크 감독에게 ‘마법사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이 마법사는 지난달 31일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 겸 평가전에서 코소보를 2-1로 제압하며 상승세를 탔다.
쿠베크 감독은 중앙일보와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체코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건 20년 만이다. 준비 시간도 짧아 멕시코의 고지대 등 현지 적응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월드컵이 어떤 곳인지 경험만 하고 올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리 못해도 조별리그는 통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A조는 무척 까다롭다. 32강 토너먼트에 오르기 위해선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한다”면서도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한국, 멕시코, 남아공 모두 해볼 만한 상대라서 조별리그를 통과가 꿈만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분데스리가에서 16골을 터뜨린 체코 골잡이 시크(왼쪽). 로이터=연합뉴스
시크는 팀이 필요할 때는 헌신적인 플레이를 할 줄도 아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EPA=연합뉴스
쿠베크 감독은 베테랑답게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축구를 펼친다. 화려한 개인기보단 강한 압박과 탄탄한 조직력으로 수비를 두텁게 한 뒤 골을 노린다. 또 세트피스를 앞세운 간결한 플레이를 중시한다. 조별리그 통과 전략도 그의 축구와 비슷하다.
쿠베크 감독은 “매 경기 처절하게 싸우겠다는 각오로 임할 것이다. 다만 모든 경기를 다 이길 필요는 없다”면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승점만 챙기면 된다. 어느 팀을 상대로 총력전을 펼치고, 어느 팀을 상대로 숨고르기를 해야 할 지 철저히 따져서 경기를 치를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국은 1승 제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물론 1차전부터 승리를 노릴 것이다. 한국이 강하지만, 공은 둥글다. 축구에선 ’절대 못 이길 상대’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맞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에이스 손흥민(LAFC) 봉쇄’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쿠베크 감독은 “손흥민이 얼마나 위협적인 공격수인 지는 잘 안다. 그래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A매치(코트디부아르·오스트리아전) 기간 분석관을 파견해 손흥민과 주요 한국 선수들을 체크했다. 당시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일찌감치 움직여서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을 낱낱이 해부했다”면서 “그 결과 손흥민을 막을 방법을 찾아냈지만, 지금 공개하진 않겠다. 우리 팀 내부의 비밀”이라고 전했다.
쿠베크 감독은 손흥민을 꽁꽁 묶을 방법을 준비했다고 했다. 뉴스1
체코와 한국은 조 2위를 다툴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한국 대표팀 이강인(왼쪽)과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
체코의 강점으로는 ‘강한 정신력’을 첫손에 꼽았다. 쿠베크 감독은 두 차례 승부차기를 이겨내고 기어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을 예로 들며 “현재 체코는 유럽축구선수권 4강에 올랐던 2004년처럼 파벨 네드베드, 얀 콜러, 페트르 체흐 등이 버틴 황금세대 같지는 않다. 하지만 팀워크와 조직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경기를 지고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뒤집는 저력이 있다“면서 ”강인한 정신력이야 말로 우리의 가장 큰 무기다. 그런 점에선 한국 축구의 투혼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체코의 핵심 선수들도 소개했다. 쿠베크 감독은 “우리를 분석한 사람이라면 유럽 PO에서 승부차기를 두 차례나 막아낸 마체이 코바르시(에인트호번)와 주장이자 핵심 센터백인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프턴)가 수비의 핵심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크레이치는 득점력에 리더십까지 갖춘 팀의 전신적 지주”라고 칭찬했다.
공격 선봉으로는 스트라이커 파트리크 시크(레버쿠젠)를 강조했다. 시크는 2025~26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6골(득점 4위)을 터뜨린 유럽 정상급 골잡이다. 쿠베크 감독은 “시크는 말이 필요 없는 공격수다. 골 냄새를 맡을 줄 안다“고 표현했다. 체코는 5일 미국 뉴저지 레드불 아레나에서 과테말라와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 뒤 텍사스주 맨스필드 베이스캠프에서 본격적인 월드컵 준비에 돌입한다. 쿠베크 감독은 “체코는 강한 멘털로 똘똘 뭉쳐있다”며 선전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