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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닮은 좀비에 홀렸다…현대무용 접목한 ‘군체’ 400만 초읽기

중앙일보

2026.06.0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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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속 한 장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고 정보 교류를 한다. [사진 쇼박스]

영화 '군체' 속 한 장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고 정보 교류를 한다. [사진 쇼박스]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실사 좀비 영화 ‘군체’가 400만 고지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이래 13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3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까지 371만명이 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좀비 묘사만큼은 호평이 더 많다. 현대 사회를 무서운 속도로 장악 중인 인공지능(AI)의 특성을 좀비 캐릭터에 반영한 것부터 이색적이다.

‘군체’ 속 좀비는 연 감독의 전작들과 다르다. ‘부산행’(2016), ‘반도’(2020) 속 좀비처럼 기형적 자세로 빠르게 이동하는 한국형 ‘워킹 데드’에 그치지 않고 진화를 거듭한다. 네발로 기다가 두 발로 뛰어다니고, 문자 메시지를 읽으며, 나중에는 거짓말까지 한다. 개미처럼 페로몬으로 집단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에, 좀비 하나가 습득한 정보는 삽시간에 전체 무리에 퍼져나가 진화 속도도 빠르다. 얼핏 보면 사람처럼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마치 AI처럼 사람을 모방하지만, 사람 같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이 공존한다. 이 괴리에서 오는 기괴함이 관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지난달 26일 만난 연 감독은 실제 “AI 시대상을 반영해 집단 지성으로 진화하는 좀비를 구상했다”면서 “(AI를 통해 상용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이) 집단적 사상의 통합이다 보니, 개별성이 너무나 무력해진다. 집단성에 대항할 수 있는 개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를 담았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영화 '군체' 속 한 장면. 집단 소통이 가능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서영철(구교환)이 좀비들을 조종하고 있다. [사진 쇼박스]

영화 '군체' 속 한 장면. 집단 소통이 가능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서영철(구교환)이 좀비들을 조종하고 있다. [사진 쇼박스]


좀비 표현 방식에도 현대무용을 본격 접목해 전작과 차별화했다. 척추 마디를 도미노처럼 써서 기하학적 곡선을 만들어내는 현대무용의 특징이 좀비 표현을 다채롭게 했다. ‘부산행’ ‘킹덤’ 시리즈 등 좀비 안무를 도맡아온 전영 안무감독과 더불어, 현대무용수 22명이 직접 투입돼 좀비 안무 아이디어를 더했다.

현대무용수들의 독특한 표현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대무용에서 특정 신체 부위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아이솔레이션’ 테크닉이 대표적이다. 좀비들이 극 중 생존자인 현희(김신록)가 숨어 있는 통제실 위치를 찾기 위해 키오스크에서 키보드를 두드릴 때 보인 기괴한 손동작 등에서다.

주차장에서 서너 명의 좀비가 한 몸처럼 합체한 채 생존자를 찾는 모습도 섬뜩하다. 이는 생존자 현석(지창욱)이 하반신 장애가 있는 누나 현희를 등산용 지게에 업고 다니는 모습을 좀비가 모방했다는 설정이다. 연 감독은 “가끔 AI가 만드는 이미지를 보면, 손가락을 6개로 그리는 등 인간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한다”며 “인간을 흉내 내지만 이런 불쾌한 실수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을 좀비에 투영했다”고 밝힌 바다.

전 감독은 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좀비의 시점에서 현석이 현희를 업은 모습은 ‘한 명은 앞을 보고 한 명은 뒤나 옆을 봐줄 수 있어 시야가 확장된’ 즉 진화된 모습”이라며 “주차장에서 생존자를 찾던 좀비들이 몸을 합쳐 하나는 차 밑을 볼 때 다른 하나는 차 위, 차 사이를 동시에 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안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런 합체 안무나, 합체된 상태에서 순식간에 흩어져 뛰어가는 장면 모두 현대무용수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는데, 관절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강인한 피지컬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못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절정인 ‘앤트밀’ 아이디어도 안무팀에서 출발했다. 앤트밀이란 앞선 무리의 페로몬 흔적만을 맹목적으로 쫓아가던 개미들이, 끝없이 원을 그리며 탈진에 이르는 현상이다. ‘군체’ 속 좀비 집단도 점차 똑똑해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집단적 사고가 자멸을 야기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영화 촬영 전 사전 회의에서 현대무용수인 함초롬 안무가가 앤트밀 동작을 좀비 안무 참고 자료의 하나로 제시했다. 당시 시나리오 단계에선 좀비들이 집단 오류를 일으킨다는 설정은 있되, 구체적인 오류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안무팀 아이디어를 연 감독이 채택하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게 됐다.
영화 '군체' 속 한 장면. 좀비들이 한 몸처럼 합체된 기괴한 상태로 움직인다. [사진 쇼박스]

영화 '군체' 속 한 장면. 좀비들이 한 몸처럼 합체된 기괴한 상태로 움직인다. [사진 쇼박스]




‘시대 불안’ 반영하는 좀비물

‘군체’를 계기로 돌아보는 ‘연상호 좀비영화’ 변천사도 흥미롭다. 좀비물은 배경이 되는 장소나 영화적 장치를 통해 시대의 불안을 반영한다. 이는 현대적 좀비를 탄생시킨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밤’(1978)이 쇼핑몰을 무대로 무분별한 소비문화와 물질주의를 풍자한 이래 계승돼온 일종의 법칙이다. 연 감독은 이러한 장르성을 비틀며, 한국적 색채를 불어 넣어왔다.

1157만 관객을 동원한 연 감독의 실사영화 데뷔작 ‘부산행’은 한 명의 좀비 바이러스 보균자에게 뚫린 열차라는 작은 사회가 감염 공포에 휩싸이는 모습을 그렸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개봉한 영화 ‘반도’는 국가 단위로 넓어진 공간이 좀비 바이러스라는 재난 탓에 초토화된 종말 이후 세상을 그렸다. 거리 두기 제한에도 381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좀비 안무도 그에 맞춰 달라졌다. 시민들이 맨주먹과 야구 배트로 좀비에 맞서는 등 육탄전이 부각된 ‘부산행’이 아크로바틱한 자세, 빠르고 공격적인 움직임을 ‘K 좀비’ 특성으로 부상시켰다면, ‘반도’ 속 좀비는 퇴화한 신체를 가진 압도적 물량의 좀비들이 마치 사회적 재난의 배경처럼 등장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 속 한 장면. 좀비들이 열차 창문에 매달려 있다. [사진 NEW]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 속 한 장면. 좀비들이 열차 창문에 매달려 있다. [사진 NEW]

‘군체’는 좀비 설계의 흥미로움에 비해, 평면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극단적인 선악 구조가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 감독은 이에 좀비 자체의 공포감이 연출 목적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행은 아빠와 딸의 관계처럼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캐릭터들의 마음이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소였지만, ‘군체’에선 좀비 자체가 공포 요소이기에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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