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접할 수 없는 강속구로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한 밀워키 제이콥 미저라우스키. 경기마다 적지 않은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임에도 직구 평균 구속이 160㎞를 육박한다. 미저라우스키가 21세기의 놀란 라이언으로 불리는 이유다. [AP=연합뉴스]
지난 1974년, ‘강속구의 대명사’ 놀란 라이언이 시속 100마일(약 161㎞)의 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당대 과학자들조차 구속 100마일은 ‘인간이 넘볼 수 없는 물리적 한계 영역’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이름은 야구를 넘어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를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메이저리그(MLB) 마운드에는 한층 진화한 ‘21세기형 놀란 라이언’이 서 있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24세 청년, 제이콥 미저라우스키가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100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무려 57차례나 포수 미트에 꽂아 넣었다. 지난 2008년 투구 추적 시스템(PTS)을 도입한 이후 헌터 그린이 줄곧 보유 중이던 단일 경기 종전 기록(47회)을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 그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9.9마일에 이른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메이슨 밀러(101.2마일)나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의 에드가르도 엔리케스(100.3마일)처럼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도 있지만, 이들은 짧은 이닝 동안 전력투구하는 불펜 투수다. 불펜 투수들이 100m를 폭발적으로 달린 뒤 숨을 고르는 스프린터라면, 미저라우스키는 마라톤 레이스 내내 단거리 선수처럼 전력 질주를 이어가는 격이다.
범접할 수 없는 강속구로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한 밀워키 제이콥 미저라우스키. 경기마다 적지 않은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임에도 직구 평균 구속이 160㎞를 육박한다. 미저라우스키가 21세기의 놀란 라이언으로 불리는 이유다. [AP=연합뉴스]
선발 투수로 ‘시즌 평균 100마일’의 구속을 유지하는 케이스는 150년이 넘는 MLB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운드와 타석을 동시에 지배하는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조차 과거 베이브 루스라는 선례가 존재했던 영역이다. 반면 선발 투수의 평균 100마일은 야구사(史)를 통틀어 단 한 명의 인간도 밟아보지 못한 완전한 미답의 영역이다. 오타니가 100년 전 전설의 귀환이라면, 미저라우스키는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괴물인 셈이다.
미저라우스키는 포켓몬스터를 즐겨 보는 평범한 청년이기도 하다. [사진 미저라우스키 SNS 캡처]
반세기 전 과학자들이 라이언의 100마일을 보며 “인간의 인대가 버틸 수 없는 파멸의 구속”이라 경악했다면, 현대 스포츠 과학계는 미저라우스키의 투구를 보며 야구의 물리적 상식이 파괴됐다며 다시 한번 경악하고 있다.
그의 공은 그저 빠르기만 한 것도 아니다. 패스트볼 평균 회전수는 분당 2610회로, MLB 전체 3위다. 야구공의 회전수가 높아지면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타자의 눈에는 공이 솟아오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여기에 리그에서 가장 빠른 시속 93.4마일(약 150㎞)의 슬라이더가 더해지는데, 직구와 엇비슷한 궤적으로 날아오다 마지막 순간 예리하게 측면으로 휘어져 나가 타자들의 판단력을 뒤흔든다. 직구에 비해 커브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의 완성도가 낮다는 평가도 있지만, 패스트볼 구사 비율(67%)이 워낙 압도적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버트 어데어 예일대 물리학과 교수의 저서 『야구의 물리학』에 따르면 시속 100마일의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 홈 플레이트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35초다. 뇌가 공을 인지하고 스윙을 시작하기까지 0.2초가 소요돼 타자가 구질과 궤적을 분석할 시간은 실질적으로 0.15초뿐이다. 그런데 미저라우스키의 신체적 특징과 투구폼은 이 찰나의 시간마저 흔들어 놓는다. 그는 신장 2m 1㎝에 달하는 긴 팔을 활용해 각도 30도 안팎의 사이드암 형태로 다른 투수보다 공을 30㎝ 이상 더 앞쪽에서 끌고 나와 던진다. 타자의 시선에선 투수의 몸통 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홈 플레이트를 통과하는 셈이다.
선발 수업을 거쳐 지난해 혜성처럼 데뷔한 그는 올해 한층 더 진화했다. 12경기에 선발 등판해 71이닝을 소화하며 6승 2패, 평균자책점 1.65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고 있다. 탈삼진은 벌써 108개를 솎아내 시즌 300탈삼진 고지를 바라본다. 크리스토퍼 산체스(마이애미 말린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등과 함께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만하다.
범접할 수 없는 강속구로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한 밀워키 제이콥 미저라우스키. 경기마다 적지 않은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임에도 직구 평균 구속이 160㎞를 육박한다. 미저라우스키가 21세기의 놀란 라이언으로 불리는 이유다. [AP=연합뉴스]
일각에서는 “투구 동작이 너무 역동적이라 부상의 위험이 높다”고 우려한다. 20대 중반의 미저라우스키는 ‘반짝 활약’에 그치지 않고 역사상 최초의 ‘선발 평균 100마일’이라는 전설로 남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47세까지 굳건히 마운드를 지킨 대선배, 놀란 라이언의 발자취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