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3개월, 국제유가는 똑같이 올랐지만 청구서는 다르게 날아들었다. 성장률과 물가가 나란히 오른 한국·일본은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커졌고, 반도체 호황에도 물가가 안정된 대만은 금리를 묶어둘 명분이 여전했다.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6%로 예상했다. 석 달 전 전망했던 1.7%에서 0.9%포인트 올려 잡았다. 주요 20개국(G20) 중 최대 상승 폭이다. 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2.9%에서 2.8%로 0.1%포인트 내린 것과 반대로,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은 크게 개선됐다.
보통 유가가 오르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교역조건이 악화하고 성장도 꺾인다. 이번엔 반도체 등 수출이 충격을 막아냈다. OECD는 올해 한국의 명목 경제성장률(실질 경제성장률+물가지표인 GDP 디플레이터)이 10.4%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국가데이터처가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1%로 전월 2.6%에서 오름폭이 커졌다. 한국은 ‘성장의 역설’에 빠졌다. 바닥 체감 경기는 여전히 차갑지만 반도체 호황을 타고 경제성장률과 물가가 날아오르고 있는 탓에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역시 유가 충격에 금리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정부 연료보조금에 눌려 4월 전년 대비 1.4% 상승에 그쳤지만,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4.9%로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았다. 1분기 GDP도 전년 동기 대비 2.1% 성장했다. 사쿠라이 마코토 전 일본은행(BOJ) 정책위원은 “현재 경제 여건에서도 6월에 금리 인상을 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대만은 한국처럼 반도체 호황을 누리면서도 다른 청구서를 받았다. 대만 통계당국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 전망은 9.6%로 16년 만의 최고였고, 1분기 성장률은 14.6%로 48년 만의 최대 폭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에 그쳤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9%로 중앙은행의 목표(2%)를 밑돈다. 기준금리도 지난 3월 연 2%로 동결됐다.
대만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물가와 환율 관리에 나선 덕분이다. 대만 정부는 아시아 지역 최저 수준의 연료 가격 유지, 휘발유·경유 같은 원자재에 대한 세금 감면(50%), 가정용 가스 가격과 전기요금 동결 등 강도 높은 물가 억제책을 펼쳤다. 정부 방침에 맞춰 국영 정유사 CPC는 5월 말까지 9주 연속 휘발유·경유 가격을 동결했고, 국영 전력회사인 타이파워도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중동전쟁 이후 미국 달러당 31대만달러대에서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환율도 대만의 수입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대만 중앙은행은 세계 6위 규모의 외환보유액(5969억 달러, 올 3월 말 기준)을 토대로 환율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동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 2월 말 이후 한 달 동안 대만은 86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시장 안정에 썼는데, 같은 기간 한국 외환보유액 감소액(40억 달러)의 2배가 넘는다.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경상수지 흑자)가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한국과 다르게 대만에선 막대한 경상 흑자가 국내에 쌓이고 있는 점도 대만달러 약세를 막는 요인이다.
대만과 달리 한국은 성장세 탓에 고금리의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 3% 내외의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며 “문제는 인상 횟수보다 높은 금리의 지속 기간”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