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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중앙일보

2026.06.03 10:25 2026.06.08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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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07년에 정년퇴직을 하니 식구 벌어먹이느라고 고생했다며, 아내가 미주 대륙 종단 여행을 시켜주었다. 막내 부부가 사는 미네소타주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칸쿤과 마야문명을 돌아본 3주간이 나에게는 매우 행복했다. 다행히도 미니애폴리스에서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사진)의 유작전이 열리고 있었다.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나 자란 프리다는 미술에 재주가 있어 어린 나이에 저명한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벽화 그리는 장면을 보고 미술에 심취했다. 그러나 꿈 많던 여고 시절에 교통사고를 겪고 3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으며, 평생에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의 부모님이 이젤을 장만해 주었다. 겨우 걷게 된 프리다는 그림을 들고 리베라를 찾아갔다. 예술적 교감이 통한 두 사람은 바로 결혼했는데, 프리다가 22세였고, 남편은 43세의 유부남이었는데 체중이 아내의 두 배인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부상으로 평생 자궁 출혈을 앓던 그에게는 자식이 없다. 예술을 끄나풀로 하여 리베라와 10년을 살았으나 남편의 외도를 참지 못하고 그곳에 망명해온 트로츠키와도 연정을 나눴다. 남편에 대한 미움을 피할 수 없어 결혼 10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아 이혼 1년 만에 다시 리베라와 재혼했다.

그들은 10년 넘게 더 살다가 프리다가 47세 때 수많은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났다. 전직 대통령인 라자로 카르데나스가 조문을 왔다. 트로츠키를 존경한 프리다를 위해 조곡으로 레닌의 장송곡 ‘젊은 수비대(Young Guard)’를 틀어주었고, 출관할 때는 러시아 국가 ‘인터내셔널’을 연주했다. 정부는 기념관을 짓고 그의 작품을 국보로 지정했다. 다소는 외설적이고, 향토색과 초현실주의적인 자기 이야기를 담은 그의 작품 앞에서 나는 문득 천경자를 회상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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