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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골목길 서점에서] AI로 고전을 읽어볼까?

중앙일보

2026.06.03 10:29 2026.06.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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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골목길 서점엔 ‘오픈런’ 따위는 없다. 팝업스토어의 성지 성수동에선 문도 열기 전에 손님이 장사진을 이루는 건 흔한 일이겠으나,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들이닥치는 일이 오히려 낯선 게 골목길 서점이다. 다수의 행인이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양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점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다 독서문화가 소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폐강했던 고전 읽기 강좌 되살려
AI 활용한 개별 독서 지도 성공적
방법 혁신하면 독서는 계속될 것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이 세상이 책을 외면한다고 해서 지구의 종말이라도 다가올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책 읽는 사람은 인류 역사상 언제나 소수였다. 그래도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유튜브 쇼츠 시청 증가보다는 반가운 일이다. 좋은 책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이번 학기에 ‘사회과학 고전읽기’라는 과목을 ‘용감하게’ 열었다. 대학에서 강좌 하나를 개설하면서 “용감하게 열었다”고 요란하게 표현한 이유는 불과 몇 해 전 수강생 미달로 폐강된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이미 망한 이력이 있는 강의를 단순 반복할 수는 없는 법! 신메뉴를 추가했다. 신메뉴의 치트키는 ‘생성형 AI 활용 책 읽기’였다.

책 읽는 방법은 역사상 늘 변해왔다. 쓰인 글에 말의 흔적이 남아 있던 시절, 사람들은 책을 소리 내어 읽어야 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자문화가 인쇄문화의 만개로 정점을 이루면서, 소리 내지 않고 오로지 눈으로만 읽는 묵독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독서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사람이 쓴 글보다 인공지능이 쓴 글을 더 많이 읽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독서법이 싫든 좋든 바뀌어야만 독서는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생성형 AI를 독서의 도구로 삼는 고전 읽기는 낯선 방법이었지만, 수강생과 함께 새 길을 개척해보자고 다짐하며 개강을 맞이했다.

수강생의 속내가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 다른 강의의 ‘치트키’로 쓰려는 건지, 정말 책을 읽는 방법을 배우려는 의도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신장개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인기 강의 근처까지 갈 정도로 수강생도 제법 모였다.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생이 이 강의 정보를 어떻게 접했는지 청강 허락을 요청하는 이메일도 보내와 지난 폐강 사태로 인한 상처에 희망이라는 속살이 빠르게 돋아났다.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완독하여 독서 자체가 낯선 세대에게 지식이 전수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방법인 독서를 자신의 경험으로 만드는 것, 그것을 강의목표로 삼았다. 생성형 AI가 독서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독서를 돕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바람도 품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를 읽어낼 수는 없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내려면 그가 살아냈던 당대의 피렌체 정세를 알아야 한다. 고전 읽기는 역사적 배경의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허들을 뛰어넘어야 성공할 수 있다.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치트키’는 배경지식 확보다. 우리는 강의에서 생성형 AI를 배경지식 확보라는 허들을 넘는 도구로 사용했다.

생성형 AI는 대규모 강의의 한계를 돌파하는 수단으로도 적절했다. 개인별 배경지식과 선이해의 차이를 교수가 개인 맞춤형 지도로 미세조정하는 건 소수 인원으로 수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별 차이가 확인되는 순간, AI를 개인 맞춤형 도구로 활용했다. 학생은 교수가 설명하는 배경지식을 경청하며 각자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목록으로 작성했고, 그 목록을 참조하며 생성형 AI와 대화를 나누게 했다. 배경지식의 차이가 약화된 후 교수는 책을 해석하는 방법을 시연했고, 학생은 그 시연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혼자의 힘으로도 책을 해석할 수 있는 기량을 연마하도록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 같았던 4권의 사회과학 고전을 읽어냈다.

다시 깨달았다. 독서의 방법을 끊임없이 혁신한다면 독서라는 행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마지막 강의 시간엔 한 학기 동안 이 낯선 실험에 용감하게 함께 해준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사회과학 고전읽기’ 수강생들에게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할 것이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경제정치사회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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