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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엔기념공원, 추모와 시민공원의 조화를

중앙일보

2026.06.03 10:40 2026.06.0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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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 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전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서정인 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전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자리한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UNC)가 전사자 안장을 위해 조성했다. 1955년 대한민국 국회의 묘지 부지(13만3701㎡) 기증 결정에 따라 유엔총회는 유엔이 이 묘지를 영구적으로 관리할 것을 결의했다.
부산 남구에 있는 유엔기념공원 모습. 사진 부산시

부산 남구에 있는 유엔기념공원 모습. 사진 부산시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인 유엔기념공원 조성 75주년이자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유엔기념공원을 어떤 공간으로 가꿔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유엔기념공원은 생태계의 보고이자 324만 부산 시민의 일상 속의 도시 녹지다. 지난해 47만 명이 다녀갔으며, 올해 들어 3월 말까지 전년보다 50% 증가한 12만 명이 방문해 연말까지는 6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조성 75주년 맞아 연간 60만 방문
유일 유엔군 묘지 경건함 지키며
품격 있는 ‘평화의 얼굴’로 가꿔야

그렇다면 유엔기념공원은 묘역의 경건함을 지키면서 어디까지 시민에게 열려 있어야 할까. 유엔기념공원의 미래는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분명한 것은 어디까지나 추모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곳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14개국 2339명이 잠들어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와 프랑스 노르망디 미국묘지 등 국제 전쟁묘지의 관리 원칙에 따라 엄숙성과 경건함을 유지해야 한다. 잔디 출입도 참배 목적 중심으로 제한하고, 지나친 소음이나 놀이 문화는 제한해야 한다.

지난달 14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내 참전용사 묘역에서 한국전쟁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야콥 코넬리스 콘스탄세 예비역 육군 대령의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내 참전용사 묘역에서 한국전쟁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야콥 코넬리스 콘스탄세 예비역 육군 대령의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이후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고국에서 생을 마친 참전용사 37명이 다시 유엔묘지에 안장되었다. 지난달에도 네덜란드 참전용사 한 분과 프랑스 참전용사 두 분이 전우 곁으로 돌아왔다. 2007년부터 매년 11월 11일에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열린다. 그날 오전 11시가 되면 세계 곳곳에서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하며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린다.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다시 이곳을 찾고, 어떤 이는 생의 마지막 안식처로 이곳을 선택하는 이유도 전우가 잠든 추모 공간의 경건함이 유지되고, 한국 정부와 국민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녹지구역은 시민 친화적 활용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시민들이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젊은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외국 참배객들이 부산의 국제성과 평화 정신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피크닉 장소나 상업적 축제보다는 추모의 성격을 담은 소규모 음악회, 평화 인문학 강연, 자연생태 프로그램처럼 공간의 품격을 유지하는 방향이 더 어울릴 것이다.

둘째, 행사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추모행사는 유엔기를 포함 24개 국가의 국기가 휘날리는 상징구역과 주묘역에 가까운 공간에서 엄숙하게 진행하는 지금의 원칙을 지켜나가고, 문화행사는 유엔군 위령탑 앞이나 녹지구역에서 추모 예술 형태로 개최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유엔기념공원의 의사 결정기관은 11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인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UNMCK)다. 이 위원회는 공원에서 무엇을 허용하는지 민감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 결국 핵심은 공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코 죽음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앞으로의 조경과 관리 방식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는 효율성과 안전성을 위해 드론과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한 공원 관리가 확대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도 넓은 잔디와 수목 관리, 병해충 점검, 야간 순찰, 여름 폭염 안전 문제 등을 생각하면 기술 도입 필요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미래의 유엔기념공원은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향이 바람직해 보인다. 효율은 기술이 돕고, 의미는 사람이 지키는 방식이다.

유엔기념공원은 단순히 묘지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역형 유엔기념묘지’ 모델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야 한다. 동시에 시민들의 일상에 평화의 가치가 스며들어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숭고한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세계 유일의 성지의 품격을 지켜내고 완성해갈 때 비로소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어느 도시와도 다른 특별한 ‘평화의 얼굴’을 부산에 선사하게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정인 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전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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