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끝난 6·3 지방선거는 유권자로선 출제 기관이 다른 입시 문제를 푸는 것처럼 유독 어려웠다. 16개 광역 시·도지사와 교육감, 시장·군수·구청장, 광역의원 및 기초의원(비례대표 포함),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4곳까지 투표용지만 최대 8장이었다. 그만큼 용지별로 기표 도장을 찍을 때 신경 쓸 게 많은 다차원 선거였다. 중앙 정치 요인으론 이재명 정부 국정 안정인가 견제인가, 여야 대표 정청래·장동혁에 대한 심판 여부, 차기 대선주자 한동훈·조국의 운명 등이 꼽혔다. 투표용지 길이만 해도 손가락 한 뼘에 들어온 지난해 6·3 대선 때와 달리 지방의회 비례대표 용지는 30㎝가 넘었다.
서울 교육감 후보 진영 인증 싸움
학폭·교권 등 교육 문제 해결 뒷전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해야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당 기호 순으로 일렬 투표하는 유권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유권자들도 기호가 없는 데다가 선거구마다 후보자 게재 순서를 바꾼 교육감 용지를 받고 적지 않게 당황해야 했다. 교육감은 교육의 중립성을 위해 정당 공천을 금지하고 묻지마 일렬 투표가 불가능하게 용지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하루 앞둔 5월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각 캠프에서 접수된 서울시장·서울시교육감 후보자 선거벽보를 분류하고 있다. 뉴스1
특히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각기 진보, 보수 및 중도 단일후보라고 ‘주장’하는 후보자가 8명 출마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역대 최다였다. 후보들은 저마다 공보물 표지에 민주진보 단일후보(정근식), 민주진보 시민후보(한만중), 진짜민주진보 유일후보(홍제남), 보수단일후보(윤호상), 중도보수 단일후보(조전혁)라고 진영 인증 마크를 인쇄했다. 진보 진영에서만 골드·실버 인증 마크 후보가 셋이었는데, 이들의 공약·경력을 보고 누가 진짜 민주진보 후보인지 가릴 방법은 없었다. 후보 난립은 각 진영 내부의 단일화 경선 갈등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현직 교육감 출신 정근식 후보가 ‘민주진보’ 후보 문구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한만중 후보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한 후보 역시 경선 부당 개입 등으로 정 후보 측을 고발했다. 결국 서울 교육감 선거는 서울시장 선거전보다 관심은 덜했을지 모르지만 경쟁은 갈 데까지 가며 뜨거웠다. 서울시 전역에 ‘동성애 교육 추방’이란 현수막을 내건 보수 후보도 비교육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관심 끌기엔 성공했을지 몰라도 학부모·학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4일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자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교육감은 2006년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네 명의 교육감(공정택·곽노현·문용린·조희연)이 선거와 직간접 관련된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세 번은 선거를 다시 해야 했다. 이번 선거도 조희연 전 교육감이 전교조 해직교사 등을 특별채용한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직위를 상실해 열린 2024년 10월 보궐선거 이후 1년8개월 만이다. 이렇게 교육감 선거를 한 번 할 때마다 선거관리비용 460억원, 후보들 선거비용 보전금 100억원 등 560억원가량이 든다. 학폭 추방, 교권 회복, 학력 격차 해소와 같은 교육 문제 해결에 누가 진짜 진보·보수 후보인지가 중요하겠는가.
본질은 한 해 11조원의 서울시 교육청 예산권을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다. 이미 교육감직 진영 비즈니스가 도를 넘었다. 그런데도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는 교육의 중립을 앞세워 또 반대하니 한심할 뿐이다.
교육감뿐 아니라 지방선거 전체에서 ‘쓰레기 소각·매립’ ‘내 집 앞 송전로’와 같은 진짜 풀뿌리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재명 대통령의 막판 투표 참여 독려, 두 전직 보수 대통령의 지원 유세 등 진영 간 총력전을 벌인 영향도 적지 않다. 어찌 됐든 현 정부 출범 1년 만의 전국 선거는 끝났다. 이어 다음 23대 총선(2028년 4월 12일)까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장기 공백기가 온다. 총선·대선 같은 중앙정치 일정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을 수 있는 남은 1년10개월이 이재명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골든타임의 마지막일 수 있다. 특검을 앞세운 내란 청산은 끝내고 청년 일자리, 부동산 안정 등 현안에 대해 국정 실력을 입증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