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 승패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참여의 인프라가 유튜브 숏폼 콘텐츠와 초대형 개인 정치유튜버 채널로 급격히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알고리즘 기반 미디어는 늘 보던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밀어준다. 심지어 숏폼은 화면을 켜는 순간 자동재생된다. 설사 TV토론에서 복잡한 정책적 논의가 있었다 해도 삐끗 말실수나 어색하게 포착된 순간의 표정이 자막과 함께 가공되어 단 수십초짜리 쇼츠로 무한재생되기 일쑤다. 극도로 맥락이 제거된 쇼츠는 확산 속도도 폭발적인지라 허위정보 만큼이나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가 정치유튜버의 팬덤, 후원구조, 알고리즘과 결합하면서 선거운동의 주요 인프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치참여 인프라 된 유튜브와 숏폼
팬덤형 신뢰는 공론장과 거리 멀어
제도권 언론 중심 막는 규제는 한계
투명성에 기반한 구조적 전환 시급
우리는 비교적 엄격한 선거 보도 준칙을 갖고 있어 다양한 선거 보도 심의기구들이 선거 기간 중에 이루어지는 보도를 감시하고 공정성, 형평성, 정치적 중립 등의 원칙을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규제의 틀은 유튜브의 영향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제도권 언론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언론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인터넷 언론사의 동영상을 포함하여 제도권 언론과 정치광고는 촘촘하게 규제하지만 정작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유튜브에 끼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지금의 문제는 개인유튜버를 선별해 직접 규제하거나 글로벌 플랫폼 대표를 불러 시원하게 호통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유튜브는 정책적으로 선거 검색에서 공신력있는 뉴스출처를 상단에 노출하도록 알고리즘을 조정한다. 또 정치광고의 경우 광고주의 신원과 광고액을 데이터로 공개한다. 이 투명성은 자연스럽게 정치 캠페인 내역을 정당 간 상호감시와 시민단체의 모니터링의 대상이 되게끔 만든다. 다만 한국은 온라인 정치광고가 금지되어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우회적인 통로로 정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실상의 대규모 정치캠페인이 이루어진다. 슈퍼챗 (실시간 후원), 다량의 굿즈판매, 각종 PPL, 자막을 통한 계좌노출 등은 자금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통로로 작동한다. 정치인과 운영자 사이의 뒷거래가 의심되는 사례가 종종 드러나기도 한다. 진영을 막론하고 팩트와 픽션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이들의 콘텐츠는 수백 개의 쇼츠로 재가공되기 일쑤다.
우리 언론의 정파성은 해묵은 문제지만 제도적 신뢰와 정체성 기반 신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늘 완전할 수는 없지만 고우나 미우나 제도화된 언론은 조직 차원에서 상호검증과 심의시스템이 작동하는 게이트키핑이 이루어진다. 한 편, 유튜버 개인의 팬덤을 바탕으로 동질감 내지는 동지의식에 바탕을 둔 정체성 기반의 신뢰는 이와는 판이하게 작동한다. 당파성과 감정적 프레임을 땔감 삼아 생존하는 정치유튜브는 대개 선과 악, 배신과 의리와 같이 감정적 가치판단이 짙은 언어로 채워져 있다. 감정에 호소하는 소통은 이성에 호소하는 소통에 비해 사람들을 행동으로 나서게끔 동기화하는 힘이 더 큰 법이다. 더 장기적인 부작용은 이러한 미디어 환경에서는 선거에 관여하고 참여할 때마다 시민성이 고양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양식있는 시민들을 점점 더 냉소적으로 돌려놓고 대신 훌리건만이 적극적인 정치참여자로 남는다는 점이다.
유튜브의 세계에는 양쪽 진영 모두 극단이 있으니 전체적으로 균형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다. 흥미롭게도 극단적 정치유튜브의 댓글 창은 때로 포털의 댓글공간보다 훨씬 얌전하다. 포털은 적어도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보고 댓글을 단다는 점을 의식하는 곳이고 정치 유튜브의 경우 오히려 우리 편끼리의 안전한 운동장이라 결속적인 의례에 가까운 지지적이고 훈훈한 댓글로 뒤덮이기 쉽다. 시민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론장은 아닌 것이다.
유튜브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금처럼 막강해지기 이전에 만들어진 공직선거법은 적극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무엇을 막을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정치소통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투명성 중심의 드러나게 하는 규제로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제한적으로라도 정치광고와 후원을 허용하여 양성화하되 일정액 이상은 출처나 금액을 공개하는 투명성을 강화하면 된다. 고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출판기념회와 같은 기형적 후원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미 양 진영의 강력 정치유튜버들이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막강한 스피커로 자리잡아 이들의 자금줄을 죄는 정치인의 출연은 요원해 보인다. 이미 이들의 관계는 정략적 이해관계가 얽힌 이익공동체이기에 이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교환되는 기본 구조는 미디어 판에 달려있다. 이 밑그림을 제대로 잡지 않는다면 성숙한 민주주의는 물 건너 갔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