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65년째 북창동을 지키고 있는 메밀국숫집 '송옥'의 메뉴판. 대표 메뉴인 판메밀국수가 1만1000원 등으로 기재돼 있다. 남수현 기자
서울 북창동 메밀국숫집 ‘송옥’의 점주 천정례(65)씨는 여름 대목이 다가왔지만 근심이 깊다. 1961년 문을 연 65년 역사의 가게를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지키고 있지만, 갈수록 운영이 어려워져서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판메밀국수 가격은 2016년 7000원에서 올해 1만1000원이 됐다. 가장 저렴한 메뉴인 유부우동 값도 5500원에서 9500원으로 올랐다. 10년 사이 4000원씩 비싸졌다.
천씨는 “가격을 올릴 때마다 고민이 크지만, 재료비며 인건비며 안 오른 비용이 없어 지난해 추석 이후 한 차례 더 올렸다”며 “예전엔 국수를 3판씩 드시던 단골손님이 이제 2판만 시키는 식으로 덜 팔려서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천씨는 바쁜 점심시간에 쓰던 홀서빙 직원도 더는 두지 않는다. “사람을 쓰면 남는 게 없어서 그냥 혼자 다 한다. 여름에 바짝 벌어둬야 겨울을 버틸 수 있는데, 코로나 때보다 요즘이 더 손님이 없어서 힘들다.”
치솟는 점심값이 직장인과 자영업자를 동시에 짓누르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023년과 2024년 조사했던 서울 중구 북창동 일대 주요 식당을 지난달 29일 다시 둘러봤다. 2023년 조사했던 28곳 가운데 13곳이 이후 3년 사이 문을 닫았고, 15곳만 운영 중이었다. 이들 식당의 절반 이상(15곳 중 8곳, 53.3%)이 최근 1년 반 사이 최저가 점심 메뉴 가격을 올렸다.
2023년 2월 첫 조사 때만 해도 식당 67.9%(28곳 중 19곳)에서 1만원 미만 점심 메뉴를 찾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이 비중이 46.7%(15곳 중 7곳)로 낮아졌다. 한 국밥집은 2023년 9000원이던 가장 저렴한 국밥 메뉴를 2024년 1만원, 올해 또 1만1000원으로 올렸다. 비교적 값싸게 배를 채울 수 있던 국밥마저 더는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서울 북창동 한 식당의 2023년 2월(왼쪽)과 지난달 29일 메뉴판. 3년 사이 가장 저렴한 메뉴 가격이 1만원에서 1만2000원으로 올랐고, 5000원~1만원 오른 메뉴도 있었다. 서지원, 남수현 기자
박경민 기자
점심 외식 지출이 부담스러운 직장인들은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북창동 먹자골목의 한 구내식당에서 만난 직장인 최모(37)씨는 “근처에 맛집은 많지만 가장 저렴한 메뉴도 대부분 만원이 넘는다”며 “사이드 메뉴를 하나 추가하고 커피까지 마시면 2만원에 육박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김밥조차 소고기라도 들어가면 한 줄에 5000원이 넘으니, 차라리 8900원에 밥·국에 여러 반찬을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을 찾게 된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 소재 회사에 다니는 이모(35)씨도 “오늘 점심에도 1만5000원짜리 메뉴를 먹고 4000원짜리 커피를 마셨더니 2만원 가까이 들었다”며 “혼자 먹을 땐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8000원 안팎에 해결하고, 커피도 최대한 저렴한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외식비 상승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기준 8개 대표 외식 메뉴 가격은 1년 전보다 대부분 3~5% 올랐다. 김밥 한 줄은 1년 전보다 4.9% 오른 3800원으로 4000원에 육박했다. 저렴한 점심 메뉴의 대명사였던 칼국수도 4.4% 오른 1만38원으로 1만원을 넘었다. 삼계탕(1만8154원), 냉면(1만2615원) 등 이미 1만원대를 넘긴 메뉴도 각각 3.7%, 4.1% 상승했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5000원대 점심 선택지인 햄버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롯데리아는 지난달 28일부터 단품 버거류 22종 가격을 평균 2.9% 인상했다. 대표 메뉴인 리아 불고기는 단품 기준 100원 오른 5100원이 됐다.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지난 2월 각각의 대표 메뉴인 빅맥과 와퍼를 단품 기준 5500→5700원, 7200원→7400원으로 올렸다. 이들 업체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인한 주요 식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인건비 등이 오른 점을 가격 인상 이유로 들었다.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각종 외식 메뉴에 들어가는 계란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축산유통정보 ‘다봄’에 따르면 계란 특란 30구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지난 2월 6561원에서 지난달 7404원으로 석 달 만에 12.9% 상승했다. 지난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산란계 1134만 마리가 살처분돼 공급이 줄어든 영향이다. 김밥집을 운영하는 A씨는 “계란값뿐 아니라 쌀·우엉·당근에 봉투 가격까지 다 올랐다”며 “남는 게 없어 봉사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찾은 북창동 먹자골목. 남수현 기자
문제는 식당들이 높아진 비용을 판매가격에 모두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른 비용 그대로 값을 올리면 손님이 줄고, 그대로 두면 수익이 줄어드는 딜레마다. 3년 전 둘러봤던 북창동 식당 28개 중 반 토막 수준인 15곳만 현재 남아 있는 이유다.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도 향후 변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 5월 외식 서비스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1%)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외식 물가는 원재료, 공공요금, 인건비 등의 영향을 받아 가장 늦게 오르는 특성이 있다. 전쟁 영향으로 석유류 가격이 24.2% 급등한 데다, 고환율에 따른 수입 농축수물 가격 상승이 겹치면 외식 물가의 상방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두원 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그동안 상승했던 국제유가가 가공식품이나 외식 물가로 얼마나 전이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5년간 농축수산물·식료품 가격과 외식 물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올랐다”며 “인건비와 임차료까지 고려하면 외식업계가 가격을 과도하게 올렸다고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소비자 인식하는 기준선과 실제 외식 물가 사이 괴리가 커져 심리적으로 더 올랐다고 느끼는 것”이며 “외식은 집밥 등으로 대체하기 쉬운 만큼, 소비 위축과 영세 자영업자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