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4월 초 서울 종로5가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자택에서 걸어서 나온 이도,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온 이도, 관광버스에서 내린 이도 있었다.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향한 곳은 효제초등학교였다.
백 년 역사를 자랑하던 그 유서 깊은 학교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넓은 학교 운동장을 빈틈없이 채웠다. 그들은 휴대용 돗자리나 신문지를 깔고 앉은 뒤 일제히 전방의 단상을 주시했다. 거기 놓인 몇 개의 의자 중 하나에 내가 앉아있었다.
15대 국회의원 총선 종로 지역구 후보자 합동연설회장의 풍경이었다. 나는 여당인 신한국당 후보로 그곳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각 당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거나 대선 후보급의 정치 거물 정도가 돼야 종로에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런 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전국구 초선 출신으로 지역구에 처음 출마하는 사실상의 정치 신인이었다.
당은 왜 그런 나를 종로에 출마시켰을까.
내가 종로와 정치적 인연을 맺은 건 총선 전해인 1995년 민주자유당 종로 지구당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거기 출마할 의도는 없었다. 나 같은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이 공석인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하나씩 맡곤 하던 관례를 따랐을 뿐이었다.
1992년 4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선 김영삼ㆍ이종찬 두 후보에게 깨끗한 경선을 당부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종로는 이종찬 의원의 탈당 등으로 인해 지구당위원장 자리가 비어있었다. 민자당 내 민정계 대표 격이던 이 의원은 민주계 대표인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여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돌연 “경선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탈당했다. 그로인해 공석이 된 종로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내가 맡게 됐다.
그 상태에서 총선의 해인 1996년이 됐다. 그해 2월 여당은 민주자유당에서 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부터 불거졌던 고질적 여당 내 계파 갈등이 갈수록 커진 데다가, 1년 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탓에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YS가 나를 부른 건 그 직후였다. 그는 여전히 직설적이었다.
" 이 의원, 이번엔 종로에 나가소. "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생각이 그 뒤에 이어진 YS의 황당 발언에 닿으려 할 때 합동연설회가 시작됐다. 나는 잠시 회상을 멈추고 연설회에 집중했다.
경쟁자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이목을 끈 건 역시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손잡고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을 바꾼 이종찬 후보였다. 종로에서만 내리 4선을 한 그 터줏대감은 그때도 당선이 유력시됐다.
다른 한쪽에는 통합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있었다. 뜻하지 않던 운명적 만남이었다. ‘5공 청문회 스타’로 인지도를 쌓아 올린 그 역시 만만치 않은 ‘다크호스’였다.
15대 총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선거홍보물. 중앙포토
처음으로 마이크를 쥔 사람은 이종찬 후보였다. 그가 연단에 서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청중은 그의 연설 한 마디 한 마디에 환호하면서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그가 종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다음 차례는 나였다. 기업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고,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탓에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일은 아직 낯설었다. 그래서 웅변 선생님까지 찾아가 원고를 달달 외우고, 손짓 하나와 시선 처리까지 반복해서 연습해 온 자리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뻔 했다. 내 차례가 되자 청중들이 우르르 일어서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후보 측 참모들이 ‘동원 청중’에게 일어서라는 수신호를 건네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공들여 준비한 원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원된 사람은 가도 상관없지만, 투표권을 가진 지역 유권자들은 다른 문제였다. 그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연설에 앞서 목청부터 터뜨렸다.
" 여러분! 발걸음을 멈춰 주십시오. "
1996년 4월 15대 총선 때 종로구에 출마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효제초등학교에 마련된 합동연설회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나가려던 이들 중 일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을 그 자리에 묶어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도 즉석에서. 다행히도 곧바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목소리를 더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