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유족이 국가에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며 원고 일부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는 광주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
1990년대, 유족 보상금 지급
이번 소송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가족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유족 23명이 제기했다. 정부는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1990년대에 유족들에게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 보상금을 지급했다. 유족 중에서도 5·18 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의 ‘재산상속인’이 보상금 지급 대상이 됐다.
당시 광주민주화보상법에는 “보상급 지급결정에 동의한 경우 피해에 대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해당 조문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받은 유족은 별도의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021년 5월 해당 조문이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 행사까지 금지한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
헌재 “화해 간주 조항 위헌”
20여년 만에 헌재 위헌 결정이 나오자 유족들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구러나 정부는 “유족들은 보상금 지급을 결정한 1990년대에 손해발생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단기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국가배상 단기 소멸시효인 3년이 이미 지나 위자료를 줄 수 없다는 취지다.
지난 3월 24일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게양대에 걸린 헌법재판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뉴스1
원심은 정부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원심은 1990년대에 보상금을 지급받은 유족들은 ‘화해간주 조항’으로 그동안 별도 위자료 소송을 낼 수 없었고, 헌재 위헌 결정이 나온 2021년부터 청구할 수 있게 됐다고 봤다. 다만 보상금을 지급받지 않은 유족들의 청구권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보상금 지급대상은 헌재 위헌 선언이 있기 전까지 위자료 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존재했다”면서도 “일부 유족들은 보상금 지급 대상이 아니어서 위 법률에 의해 위자료 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존재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대법 “피고 항변 받아들인 건 법리 오해”
지난 3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뉴스1
그러나 대법원은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소송을 낼 수 없었던 기간에는 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보상금 지급대상이 아닌 유족도) 이 사건 위헌 결정이 있기까지는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 사유가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며 “원고들은 화해간주 조항의 존재로 인해 위헌 결정 전까지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 결정으로부터 3년 경과 전 소를 제기한 이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며 “원고들이 가지는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인 원심의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