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너 (Tuner) 뛰어난 청각 능력 가진 한 피아니스트 이야기 조율사 감각으로 다이얼 속 미세한 진동 읽어 예술적 재능이 금고 해제 기술로 변하는 과정
더스틴 호프만은 미세한 표정 변화와 노련한 호흡으로 프레임의 무게중심을 장악한다. 특히 니키와 함께 피아노를 조율하는 장면들에서 영화는 범죄영화의 서사적 긴장을 잠시 유예한다. [Black Bear Pictures]
피아노 조율사(튜너)는 단순히 음을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아주 미세한 진동과 배음의 차이를 듣는 직업이다. 영화 ‘튜너’에서 튜너는 ‘세상의 숨겨진 소리를 읽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 능력을 범죄 스릴러 장치로 확장한다.
영화의 중심 인물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젊은 피아노 조율사 니키 화이트(레오 우달)다. 그는 한때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지만 청각 과민증 때문에 음악가의 길을 포기했다. 그의 증세는 작은 소리도 지나치게 크게 들려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아주 미세한 음의 차이까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니키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자신의 청각 능력이 금고 다이얼의 미세한 소리까지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음정을 맞추듯 귀를 기울인 그는 금고 내부 텀블러가 맞물리는 순간의 차이를 읽어낸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딸깍’ 소리로 들리는 금속음이 그에게는 내부 톱니와 텀블러의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울림으로 전달된다.
금고의 다이얼은 니키에게 피아노의 건반과 다르지 않다. 조율사가 음의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듯 그는 금고 내부 부품들의 긴장과 이완을 소리로 포착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마치 하나의 연주처럼 묘사하며 니키가 금속의 진동과 마찰음을 음악적 리듬으로 인식하는 인물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니키의 곁에는 노련한 조율사 해리(더스틴 호프만)가 있다.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인 그는 니키와 함께 뉴욕 곳곳을 돌며 피아노의 음을 맞춘다. 두 사람의 일상은 음의 미세한 균형을 찾아가는 조용한 노동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금고 내부의 움직임마저 소리로 읽어내는 니키의 특별한 재능은 결국 범죄 조직의 시선을 끌고 만다. 조율을 위해 길러온 그의 귀는 어느새 금고를 여는 도구가 되고 니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험한 세계의 문턱을 넘어서게 된다.
해리의 건강 문제와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니키는 범죄 조직의 리더들과 협력하며 금고 털이에 참여한다. 피아노 조율사의 섬세한 기술이 그대로 범죄 기술로 변모하는 셈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한 범죄물이 아니라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범죄에 이용되는 이야기로 묘사한다.
한편 니키는 음악 학도 루시(Ruthie·하바나 로즈 류)와 사랑에 빠진다. 이 관계는 그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중생활이 깊어질수록 사랑과 범죄 사이의 균형은 무너지고 결국 그는 자신의 재능과 인간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영화는 피아노 조율과 금고 해제라는 전혀 다른 행위를 동일한 차원 위에 놓는 방식을 취하며 보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집요하게 매달린다. [Black Bear Pictures]
니키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듣는다. 거리의 마찰음과 사람들의 숨소리 금속이 맞부딪히는 미세한 떨림까지도 그의 귀에는 과장된 감각으로 밀려든다. 영화는 이 설정을 단순한 캐릭터의 특이성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그 감각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그는 누구보다 세계를 예민하게 듣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소리에 대한 그의 증세와 능력 때문에 사람들과도 멀어진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음악으로부터 도망친다. 금고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감각을 지녔지만 정작 자기 삶은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청각 과민증을 지닌 피아노 조율사가 자신의 청각 능력을 이용해 금고를 연다는 설정은 분명 스릴러의 문법 위에 놓여 있다. 범죄 조직과 스승과 제자의 관계 위험한 의뢰와 점점 깊어지는 범죄의 수렁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의 골격만 놓고 보면 영화는 꽤 고전적인 범죄영화의 계보를 따른다.
그러나 ‘튜너’의 스토리를 조금 더 오래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관심을 가지는 주된 가치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감각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피아노 조율과 금고 해제라는 전혀 다른 행위를 동일한 차원 위에 놓으며 보는 행위보다 듣는 행위에 더 집요하게 매달린다.
도시의 소음은 배경이 아니라 압박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금속의 마찰음 거리의 소음은 니키의 귀를 통해 증폭되며 불안의 질감으로 변한다. 특히 금고를 여는 장면에서 다이얼을 돌리는 손보다 중요한 것은 소리를 듣는 귀다. 니키는 금고를 따는 것이 아니라 연주한다. 텀블러가 맞물리는 찰나의 울림을 따라가는 그의 움직임은 범죄자의 기술이라기보다 음악가의 감각에 가깝다. 그렇게 ‘튜너’는 금고털이를 하나의 청각적 퍼포먼스로 변환시키며 청취의 예술로 재구성한다.
매끈하게 완성된 인상보다는 어딘가 금이 간 듯한 레오 우달의 불안정한 분위기는 할리리우드가 선호하는 전형적인 젊은 스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Black Bear Pictures]
레오 우달은 이런 인물 니키를 꽤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그는 최근 할리우드가 선호하는 전형적인 젊은 스타와는 조금 다른 얼굴을 가졌다. 매끈하게 완성된 인상보다는 어딘가 금이 간 듯한 분위기다. 영화는 바로 그 불안정성을 적극 활용한다. 니키는 위험한 세계에 매혹되지만 동시에 그 세계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인물이다. 우달은 범죄영화의 주인공들이 흔히 보여주는 냉혹함이나 카리스마 대신 끝내 긴장 속에서 흔들리는 청년의 얼굴을 남긴다.
더스틴 호프만의 존재감 역시 흥미롭다. 그가 연기한 해리는 조율을 일종의 철학처럼 가르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좋은 조율사는 음만 듣는 게 아니라 사람의 숨결까지 듣는다”는 식의 대사를 하며 니키를 이끈다.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기능적 사제관계를 넘어선다. 해리는 니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삶의 균형을 붙잡아주는 마지막 끈처럼 보인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이면서도 소리에 대한 감각과 고독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재능의 양면성을 다루는 드라마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음향 연출이 뛰어나다.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은 이 설정을 적극 활용한다. 도시 소음이 과장되어 들리고 금속 마찰음이 리듬처럼 변하며 금고를 여는 장면은 거의 피아노 연주처럼 연출된다.
호프만은 더 이상 과거의 격정적인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미세한 표정 변화와 노련한 호흡만으로도 프레임의 무게중심을 장악한다. 특히 니키와 함께 피아노를 조율하는 장면들에서 영화는 범죄영화의 서사적 긴장을 잠시 유예한다. 음을 맞추는 행위가 곧 마음을 맞추는 과정처럼 그려지는 이 순간들 속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기능적 서사를 넘어선다. 어쩌면 영화가 가장 아름답게 울리는 순간은 금고를 열 때가 아니라 피아노를 조율할 때인지도 모른다.